강남훈 칼럼-‘신정승 구정승’
강남훈 칼럼-‘신정승 구정승’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02 16:4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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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
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신정승 구정승’

조선왕조 7대 임금인 세조(世祖, 재위 1455~1468)는 어린조카(단종)를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했다. 집권 초기 단종 복위 사건 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높았고, 민심까지 흉흉했지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정권은 안정을 되찾았다. 세조는 말년에 영의정 자리를 물러나 사가(私家)에서 지내던 신숙주(申叔舟, 1417~1475)를 침전으로 불렀다. 새 영의정에 오른 구치관(具致寬, 1406~1470)도 함께 자리했다. 주안상이 마련되고, 세조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내 오늘은 그대들과 흔쾌히 마시고 싶소. 다만 주흥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할 테니 들어 주었으면 좋겠소” 신숙주와 구치관은 이구동성으로 왕명을 접수했다.

세조는 “내가 지금부터 묻는 말에 바르게 답하지 못하면 벌주(罰酒)를 먹어야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웃으면서 좋다고 했다. 그러자 세조는 술 한 잔을 따라 두 사람 앞으로 내밀며 “신 정승 드시오”라고 했다. 신숙주가 “예”하며 술잔을 받았다. 세조가 껄껄 웃으며 “신(新) 정승에게 들라고 한 것인데…틀렸으니 벌주를 드시오”라고 했다. 잠시 후 세조는 다시 술잔을 내밀며 “구 정승 드시오”라고 했다. 구치관이 “예”하고 술잔을 받자 “구(舊) 정승을 불렀는데 왜 구(具) 정승이 받느냐”며 구치관에게 벌주를 먹였다. ‘신정승…’, ‘구정승…’으로 몇 번의 벌주가 돌아가니 이번에는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세조가 “임금이 술잔을 내리는데 받는 자가 없으니 이런 불충(不忠)이 어디 있는가?”라며 두 사람 모두에게 벌주를 내렸다. 그렇게 웃으며 한잔, 난처해하며 한잔 하는 진퇴양난의 술자리였지만, 두 정승의 불편했던 그동안의 관계는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익히 알려진 세조의 ‘신정승 구정승’에 얽힌 일화다. 정란(靖亂)공신도 아니면서 오직 올곧음 하나로 정승에 오른 구치관이 새로 우의정에 임명 받았을 때 영의정이었던 신숙주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음을 눈치챈 세조가 이들의 관계를 풀어주기 위해 이 같은 술자리를 마련했다. 소통의 장을 만들어 신(新)-구(舊) 정승이 서로 협력하며 조정을 잘 이끌어 달라는 세조의 무언의 당부였고, 풍류와 해학은 군신 간에 격의 없는 공간을 만들어 국정운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2일부터 4·15 총선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여야는 이날 새벽부터 마트나 시장 등을 돌며 표심을 공략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을 지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구 130여석, 비례대표 20여석 등 과반이상 당선을 목표로 첫발을 내디뎠다. 극적으로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영입한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민생경제를 살리겠다는 각오아래 ‘바꿔야 산다’며 지역구 130석, 비례대표 20여석 등 원내 1당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했다. 경남의 16개 선거구 70여명의 후보들도 이날부터 일제히 거리로 나섰다. 평균 경쟁률 4.62대1을 기록하고 있는 경남지역은 여야 정당 외에도 9명의 무소속 후보들이 금배지 사냥을 시작했다. 통합당은 16개 선거구중 최소 13개 이상을, 민주당은 과반의석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통합당 공천에 반발, 고향(거창)에서 무소속으로 나선 김태호 후보 등의 선전여부도 관심 포인트다.

이번 총선은 연일 창궐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각 후보들이 대면(對面)접촉에 상당히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후보들은 대규모 세(勢)과시 보다 비대면 선거운동 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선거방송토론회, 홍보영상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선거홍보물 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누가 더 화끈하게 돈을 뿌리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벌써부터 SNS를 통해 상대후보를 비방하는 마타도어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당선에 목숨을 건 후보와 정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후보(정당) 흠집 내기, 매표경쟁, 터무니없는 공약 남발 등이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자칫 정책선거가 실종될 우려마저 제기된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은 그에 걸 맞는 인물은 선택해야 한다. ‘신정승 구정승’의 일화처럼 제대로 된 선량(選良)이 누구인지 ‘매의 눈’으로 날카롭게 지켜볼 필요가 더 커진 것이 이번 총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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