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뜰채로 건져 올리는 봄 하늘
시와 함께하는 세상-뜰채로 건져 올리는 봄 하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08 15:3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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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뜰채로 건져 올리는 봄 하늘

기억에도 분명
맛의 꽃봉오리 미뢰(味蕾)가 있다
건 멸치 서너 마리로 어림 밑간 잡아
신김치 쑹덩쑹덩 썰어 넣고 김칫국물 넉넉히 붓고
식은 밥 한 덩이로 뭉근히 끓어내는
어머니 생시 좋아하시던 김치 박국
신산하지만 서럽지는 않지
이 골목 저 골목 퍼져나가던 가난의 맛
기억의 핏대줄 비릿하게 단단히 휘감아 들이는 맛
반공(半空)의 어머니도 한술 드셔보시라
뜰채로 건져 올리는 삼월 봄 하늘
봄 나뭇가지 연둣빛 우듬지마다
천둥처럼 퍼부어지는 저 붉은 꽃물 한 삽!

(김명리, ‘김치박국을 끓이는 봄 저녁’)


예전 생활이 몹시도 어려웠던 그 시절 먹거리조차 흔하지 못했던 때 예전의 엄마들은 허기에 지친 자식들에게 ‘김치박국’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자식들에게 먹여주셨는데, 김치박국이란, 김치죽의 경상도 동해안 지역의 사투리다. 어려웠던 당시의 생활을 기억하면서 천천히 이 시를 음미해 본다면 짙은 육친의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혓바닥에는 꽃봉오리 모양의 유두가 일만 개 정도 있으며 여기에서 음식의 쓰고 시고 짜고 단 맛을 느끼게 하는데, 이것을 ‘미뢰(味蕾)’라고 한다. 이 김치박국은 어느 한 맛에 머물러있지 않다. 시큼하고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맛이 동시에 느끼게 하는데. 시인은 이 맛을 ‘시산하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큼하고 매운맛을 뜻하니 개성에 따라 그 맛의 느낌이 다소 다를 수도 있지만, 그 맛을 생각하면 금방 군침이 돈다. 아마 어릴 적부터 단련된 미각이 기억의 저변에 깊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오래전 어머니는 이 요리를 좋아하셨는데, 육수용 “건 멸치 몇 마리와 함께 대충 썰어 넣은 김치와 그 국물, 그리고 식은 밥 한 덩어리” 바쁜 일손 때문에 요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안 되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짐작으로 대충 만든 당시로써는 초 간단 요리이다. 또한, 배고픈 나는 빨리 뭔가를 먹어야 하므로 맛도 맛이지만, 빨리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기 때문에 요리를 만드는 시간이 또한 빠른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 대충 만들 수밖에 없는데, 희한하게도 그 대충 만든 음식이 맛도 기가 막힌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은 김치박국 맛이지만, 어머니 처지에서야 또 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닌 모든 이웃이(이 골목 저 골목)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당시 그 가난한 맛은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

해마다 삼월만 되면, 시인은 그해 봄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 마치 뜰채로 물고기를 잡아 올리듯, 당시의 기억이 그대로 되살려 그때 김치박국을 먹으면서 흘린 김칫국물의 기억이 마치 붉은 꽃물이 되어 뇌리를 강타하는 천둥(미뢰)이 되어 춘궁기였던 삼월의 붉은(가난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어린 자식들 입에 먼저 먹이기 위해서 우리 어머니들은 거의 굶주린 반공(半空)의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배를 채워줘야 했는데, 그 해결의 열쇠가 김치박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매년 봄 나뭇가지 끝자락으로 연초록 싹이 올라올 때면 먹거리가 가장 귀했던 춘궁기에 어머니의 시름을 해결할 수 있던 최대의 원군이 김치박국이었으니, 그 고된 세상살이 중에 김치박국이 얼마나 고맙고 믿음직했겠는가.

이 시에서 ‘신산’이나 ‘미뢰’라는 용어를 동원하여 중의(重意)적 효과를 노림으로써 시적 품격을 한층 올리고 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은 용어들이지만, 이 단어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즉 신산은 맵고 시다는 맛의 의미도 의미이지만, 당시의 어려웠던 시절의 느낌과 결부시킴으로써, 맛과 함께 어려운 생활상을 떠올리기도 하며, 미뢰 또한, 음식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신체 기관의 의미와 함께 천둥처럼 충격을 준다는 의미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맛을 기억하게 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어 멋진 표현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적당한 위치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동원된 시인의 노련한 언어 마술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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