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여제단 이야기)역병 돌 때 제사 지냈던 여제단, 지금도 남아있을까
(경남의 여제단 이야기)역병 돌 때 제사 지냈던 여제단, 지금도 남아있을까
  • 황원식기자
  • 승인 2020.04.13 17:49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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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지 110여년 경남 여제단 복원 움직임
비봉산 진주 여제단은 시민단체서 복원 노력
창원 읍성 여제단 이달 지표조사 복원 가능성
사천 소극적 태도로 곤양·사천 여제단 요원
대부분 흔적 찾기 힘들어 ‘아젠다 형성’ 필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역병이 돌았을 때, 우리 선조들은 각 고을마다 있었다는 여제단(厲祭壇)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힘든 이 재난시기에 어쩌면 우리는 이보다 더 절박했을 조상들의 마음을 여제단 유적을 보면서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경남지역에 숨어있던 여제단의 복원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현황과 복원 계획 등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속출하면서 도지사와 시장 등이 TV 브리핑을 통해 시민들에게 안전 지침을 일러주기도, 위로하는 말을 전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이 같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는 고을의 수령들은 수시로 여제단 앞에 섰다고 한다.


본래 여제단은 흉년에 굶어죽거나 자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조들은 전염병이 발생하는 것도 위로 받지 못한 원혼들의 괴롭힘이라 여긴 걸까.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물을 끓여먹고, 몸을 깨끗하게 하는 등 민간요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의료기술이 없었기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도 전염병으로 죽은 백성은 무려 1000만 명 이상이나 됐다고 한다. 당시엔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그 공포가 얼마나 컸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은 전염병의 공포를 없애려 애썼으며, 죽은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그것은 단순한 미신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보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으며, 구성원을 위한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고, 처참한 현실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몸짓이 아니었을까.

◆경남 여제단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
여제단은 성황단, 사직단과 함께 3단의 하나로 관아에서 필수적으로 세우는 제단이었다.

경남지역에도 각 고을마다 여제단이 있었으나, 1908년 일제에 의해 폐지되면서 그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1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제단의 존재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있었고, 그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복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남의 사직단의 경우는 산청군 단성 사직단이 유일하게 남아 있었고, 창녕·진주·고성 사직단이 복원·발굴돼 기념물로 지정이 되었다. 하지만 경남의 여제단은 현재까지 형체가 드러난 곳조차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김미영 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경남의 여제단은 옛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과거 석축 1~2단 정도의 제단을 지었지만, 지금은 허물어지고 풀, 흙이 덮여있어서 설사 그 지점을 찾아가더라도 육안상으로 찾아내기 쉽지 않다”며 “제단 옆에 초막이나 기와집을 지었을 수는 있는데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지표조사를 정밀히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진주시민들은 여제단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여제단 위치를 예측하고 진주시에 그 일대의 지표조사를 요청하는 등 심혈의 노력 쏟고 있다. 또한 창원시는 올해 4월 여제단으로 추정되는 곳의 지표 조사를 할 계획을 밝혀 일말의 복원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진주시 비봉산 중턱에 있는 여제단 복원을 염원하는 현수막.
진주시 비봉산 중턱에 있는 여제단 복원을 염원하는 현수막.

◆진주 여제단
진주의 한 시민단체가 진주 여제단이 있었던 위치를 상봉동 449·450번지 일대로 주장했다. 이곳은 현재 진주 의곡사(里谷寺)에서 10시 방향으로 60여미터 떨어진 곳으로, 비봉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여제단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최진수)는 지난 2018년부터 여제단 복원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이들은 여제단이 있었던 장소부터 추리해 나갔다.

이들은 여제단 위치 찾기에 수차례 실패했지만, 지난해 2월 24일 공청회를 통해 “동국여지승람, 진양지 등의 고문헌과 그 지역에 오래 거주했던 어르신들의 증언 등을 통해 여제단의 장소가 상봉동 449·450번지로 일치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500년 전 자료인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진주여제단의 위치는 ‘주 북쪽 1리에 있으면서 의곡사(里谷寺) 위쪽’으로 나와 있었다. 이들은 이 일대를 직접 탐방했고, 449번지 밭에서 기와 조각이 출토된 사실과, 450번지에는 우물이 있고 집이 있었던 흔적과 500년 된 석축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진주여제단복원추진위원회가 진주여제단으로 추정한 장소에서 1m 정도 높이의 석축을 발견했다.
진주여제단복원추진위원회가 진주여제단으로 추정한 장소에서 1m 정도 높이의 석축을 발견했다.

김기원 전 과기대 교수는 “40여년 전 어르신들이 그 장소에 여제단이 있었다고 말을 했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이에 추진위원회는 지난해 3월 진주시청 문화예술과에 ‘진주여제단 복원을 간절히 바라면서’라는 제목의 청원의 글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진주시는 현재까지도 여제단의 지표조사 계획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진주여제단 복원추진위원회는 진주시의 비봉산 조성 사업으로 이 일대가 가꾸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 여제단도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에 진주시 문화예술과 류덕희 팀장은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진주 사직단의 경우 위치나 흔적이 완벽히 드러나기 때문에 시기가 늦더라도 복원할 계획이 있지만 진주 여제단 위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지금 예산을 들여 지표조사를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답했다.

특히 류 팀장은 “향토·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의 협조가 있거나 그 위치가 여제단이 맞다는 공감대가 형성 됐을 때 지표조사 등을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창원 여제단

지난 2017년 처음 창원 읍성 여제단의 위치를 찾았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경남의 잊힌 역사를 찾는 단체인 ‘경남시민문화네트’의 조현근 사무국장이다. 조 사무국장이 주장하는 창원 읍성 여제단의 위치는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871번지였다.

그는 고문헌인 창원읍지를 통해 ‘(과거 관청인 동헌이나 객사를 기준으로) 창원 여단은 북 1리에 있다’는 문구를 먼저 찾았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정확한 위치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조 사무국장은 1914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지적도에서 그 일대의 다른 곳은 논이나 묘지로 표기 돼 있었지만, 소답동 871번지가 유일하게 대지(垈地·집터)로 돼 있음을 확인했다. 그때 조 사무국장은 이곳이 여제단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54년도에 찍은 항공지도를 통해 그 당시 그 일대에 네모난 터와 어떤 집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80세 이상의 어르신에게 물어본 결과, 그곳에 어떤 집이 있었다고 기억을 할뿐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1954년도 항공사진에서 창원여제단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드러나 있다.
1954년도 항공사진에서 창원여제단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드러나 있다.

지금 그 곳은 남해고속도로가 관통해 그 터의 70% 이상이 사라졌다. 올해 창원시는 이 장소가 여제단이 맞는지 지표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 사무국장은 “이미 터의 대다수가 소실되고, 그 흔적도 찾기 힘들어 보인다”며 아쉬워했다.

창원여제단으로 추정되는 소답동 871번지는 남해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70% 이상이 사라졌다.
창원여제단으로 추정되는 소답동 871번지는 남해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70% 이상이 사라졌다.

이어 “우선 창원시의 지표조사를 통해 이곳이 창원 여제단이 있었던 장소인지 확실히 드러나야 한다. 그 이후 창원시가 만약 복원 계획을 발표한다면, 그 복원 장소가 소답동 871번지가 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다행히 창원시는 경남문화시민네트워크의 제보로 이 일대의 사직단과 여제단의 지표조사를 이달 중에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원시 문화유산육성과 문화재관리 담당자는 “이달 안에 창원 여제단의 정밀 지표조사를 위해 전문기관과 용역 계약 체결할 것이다”며 “정확하게 규모, 형태 등을 확인하고 보존가치가 있다면 문화재 지정 등 그에 맞는 정책을 검토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현근 사무국장은 “설령 이곳에 여제단이 복원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경북 경산시가 3단의 하나인 사직단을 과거 있었던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 복원한 전례가 있듯이, 창원 여제단 역시 다른 장소에 복원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원 지역의 여제단은 창원읍성 이외에 진해구 웅천 읍성 여제단과 마산 여제단이 더 있다.

창원시는 진해 여제단은 내년쯤 지표조사를 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창원시 문화재관리 관계자는 “진해 웅천 읍성은 경남도 지정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관련 예산을 받아 읍성 주변의 지표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산에 있는 여제단은 아직 대략적인 위치도 파악이 안 되고 있어 조사 계획이 미뤄지고 있다.

◆사천·곤양 여제단
현재 사천시가 있는 지역은 과거 ‘사천’과 ‘곤양’의 두 개의 고을이 있었다. 그래서 그 곳에는 두 개이 여제단이 있다.

조 사무국장은 곤양 여제단 역시 찾았다고 주장했다. 그 장소는 사천시 곤양면 339번. 그는 곤양읍지에서 여제단은 ‘(동헌에서) 북쪽으로 2리에 있다’는 기록를 참고해 1915년 제작된 지적도를 대조해서 사천시 곤양면 339번지를 주목했다.

사천 곤양여제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곤양면 339번지에는 대나무 아래 밭이 있다.
사천 곤양여제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곤양면 339번지에는 대나무 아래 밭이 있다.

왜냐하면 1915년 지적도에서 그 지번이 대지(垈地)로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 주변에 342번지, 344번지, 346번지, 347번지도 ‘대지’로 표기 돼 있어서 혼선이 있었지만, 곤양면 339번지의 소유자가 국(國)으로 돼 있어 확신할 수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지적도에서 소유자가 사람 이름으로 기재된 개인 땅이었다. 이를 확인하고 조 사무국장은 이 곳이 곤양 여제단이라고 90%이상 확신할 수 있었다.

조 사무국장이 이 장소를 찾았을 때 근처에 대나무 숲이 무성하게 있었고, 주민이 그 땅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었다. 조 사무국장은 그 장소에서 여제단의 형태는 찾을 수 없었지만 근처에 돌들이 쌓여 있어, 혹시 여제단의 흔적이지 않을까 추측만 할 수 있었다. 그는 “정확한 것은 정확한 지표조사가 있어 할 것이다”고 말했다.

사천 여제단의 경우 조 사무국장은 사천시 수석리 53번지를 유력한 후보지로 꼽았다. 그는 이 곳이 1916년 지적도에서 그 일대의 다른 곳이 모두 논·답으로 표기된 반면, 수석리 53번지만 대지로 분류 돼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텃밭이 있었고, 바로 앞은 공터와 함께 빌라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조만간 이곳도 개발이 될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가 사천여제단으로 추정하는 장소로 현재 텃밭을 가꾸고 있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가 사천여제단으로 추정하는 장소로 현재 텃밭을 가꾸고 있다.

하지만 사천시는 지난 2015년 7월 3단의 하나인 곤양 사직단의 터를 발견했지만 5년이 다 된 지금도 개인 소유 땅이란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 3월 조현근 사무국장이 사천 사직단 터 후보지를 찾아내 제보했음에도 그곳이 택지개발 지역이라는 이유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문화재 발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사천·곤양 여제단의 복원은 더욱 요원한 실정이다.

◆함양 여제단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는 지난해 4월 함양의 여제단이 있었던 위치를 함양군 교산리 1010번지로 지목했다.

조 사무국장은 합양읍지를 보고 여제단이 (함양 동헌 기준) 북 2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지적도와 국가기록원에서 제공하는 지적아카이브에서 합양읍내의 모습을 대조, 이 장소를 추정했다. 이곳 역시 지적도에서 ‘대지’라는 항목에 국유지를 나타내는 ‘國’으로 표기돼 있었다. 이곳을 직접 방문해보니 지은 지 20년이 안 된 빌라 한 채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조 사무국장은 함양읍지에서는 “(동헌에서) 북 2리라고 했지만 직접 찾아보니 북1리쯤 됐다”며 “더 자세히 조사를 해 볼 것이다”고 밝혔다.

그 외 나머지 경남의 남해, 양산, 거제, 통영, 밀양, 고성, 거창, 김해, 하동, 산청, 창녕, 함안, 의령, 합천 등 여제단은 읍지(邑志) 등에서 ‘(동헌에서) 북 1~2에 있다’ 외의 위치가 정확히 알려진 곳이나 추정되는 곳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제단의 복원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에 제단이 있었다는 뚜렷한 흔적이나 근거가 더 제시돼야 하고, 복원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황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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