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사자형과 여우형
아침을 열며-사자형과 여우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22 15: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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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사자형과 여우형

사람은 태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마땅한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존재다. 누구든 이 당연한 명제를 부정할 수 없을 터, 이 평범한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 하여야 할 도리이자 행복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전혀 예기치 않은 사태가 나의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나의 바깥에서,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갑자기 밀어닥쳐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코로나19, 경제불황, 국제관계, 이상기후, 미세먼지, 환경오염, 지진과 해일, 태풍, 자연재해, 다른 이들의 시선, 간섭, 입방아, 방해, 먹거리와 일거리의 가로챔, 보증, 협박, 앞으로 가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가로막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세상사 근심사라 하였든가.

그리하여 달갑잖은 바깥의 간섭 없이 그저 아무렇지 않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얼마나 큰 행복인지 사람들은 이제야 조금씩 말들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것이 더 큰 자유로움이고, 다른 이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것보다 나를 잊어주는 것이 더 커다란 편안함임을 몸으로 느낀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정보 매체의 발달로 자기가 한 말과 기록과 행동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갑자기 확 튀어나와 생사람을 잡는 것을 보면서 최근에 새로 생기는 일거리 중 하나가 ‘지움’이란다. 어떤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그 사람을 잊게 해주는 것이 새로운 직업으로 떠오르는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 되었다. 물론 알 권리가 있다면, 잊힐 권리도 있다.

이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 없이 잊혀 지내는 편안함과 유유자적함을 뒷받침해주는 정치가 최상의 정치임을 노자는 일찍 갈파(喝破)하지 않았던가! 드러내어 외고 패고 떠들지 않으면서도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것(國之利器, 不可以示人)!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아닌가.

하여 정치에 대해 이런저런 소리를 보태지 않아도 저절로 잘 꾸려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것이련만 현실정치는 저마다의 마음에 성이 차지 않은 부분이 많아 그렇지 않으니, 부질없는 사람이 또한 그저 하릴없이 한마디 바람결에 걸쳐 본다.

21대 총선의 판세는 누구나 알고 있듯 분명하다. 여당은 개헌, 탄핵 등 국가 뼈대에 관련된 것 외에는 다할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의석수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미련 반편이라고, 마음은 미련으로 늘 여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실제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다발 채로 얻어터져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정말 진짜 야당임을 뼈저리게 통감해야 한다. 여전히 아직도 저 정권은 우리 것입네, 어쩌다 갈취당해 버려 아직 뺏어 오지 못하였네, 하는 미련에 사로잡혀, 흘러가 옛노래만 부르고 앉았다면 이 야당은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표의 지역 색깔은 동서가 뚜렷함을 삼척동자도 다 알 터, 야당은 이제 에나로 지역 정당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지역표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표의 향방도 예사롭지 않다. 여당표의 약진이 그것이다.

마키아벨리와는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사자형 여우형 인간개념을 빌려서, 파레토는 정치 엘리트를 사자형 여우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였다. 파레토는 투쟁 중심의 사자형 권력지형은 결국 변화와 창조, 개념과 결합에 능통한 여우형으로 대체하여 간다고 말했다. 이 말이 묘하게도 이번 21대 총선과 오버랩 된다.

선거라는 권력투쟁장에서 보수라고 자칭하는 야당은 사자처럼 그냥 막무가내였다. 무엇이 보수인지를 말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보수라고 강변하였다. 여당 독재라고 구호는 외쳤지만 무엇이 독재이고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를 한마디 변명도 못하면서 무조건 독재타도를 외치기만 하였다. 경제 실정이라 나팔은 불어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실정하였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구체적 비전을 밝히지 못하였다. 빨갱이 정권이라 프레임을 덧씌웠지만 어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천지삐까리로 깔아 놓은 자화자찬의 가짜 유튜브에 젖어 도취되고 그저 막연한 승리의 노래만을 불렀다.

반면 여당은 코로나 19라는 외부의 악재를 내부의 시스템으로 잘 응대하였으며 덤으로 외국 여러나라들의 뜨거운 호평도 받았다. 하지만 180이라는 의석은 막강한 힘도 실리지만 동시에 스스로 목을 치는 두려운 칼날이기도 하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민심의 향배를, 시대의 변화를, 먹거리 의 터전을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한다면 성난 민심은 여든 야든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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