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나라꽃 무궁화의 정체성을 찾자
진주성-나라꽃 무궁화의 정체성을 찾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23 15: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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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나라꽃 무궁화의 정체성을 찾자

여름부터 가을까지 잎은 자주빛이고 종모양의 꽃이 흰빛, 보랏빛, 붉은빛 등 핀다. 무궁화는 민족정신의 이미지가 표출된 나라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무궁화의 라틴어 학명은(Hibiscus) 접시꽃을 의미하고 무궁화의 원산지가 동아시아가(Syriacus) 자생지임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학명으로 무궁화를 분류한 식물학자는 스웨덴 출신의 린네(L.)이다. 그는 2년간 중동지역을 답사하며 그 지역의 식물 연구 기록과 표본을 채집한 제자의 식물 표본에 근거해 무궁화의 원산지를 ‘시리아커스’로 명명했다.

그러나 16세기 유럽에서 무궁화를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하고 무궁화의 종이 오래전 해외에서 시리아로 유입되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이 학명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무궁화의 주산지인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임을 알려주는 다수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춘추시대의 지리서 문헌으로 저술된 <산해경> 진(晉)의 최표가 쓴 <고금주> 당나라의 구양순이 쓴 <예문유취> 등에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군자의 나라란 우리나라를 가리키며 무궁화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임을 밝혀준다.

물론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를 비추고 있는 ‘단기고사’와 ‘환단고기’등 수많은 역사 사실에서도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임을 밝히고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동국 이상국집>에서 무궁화를 소재로 시를 읊고 ‘무궁화’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무궁화는 우리 민족과 운명을 같이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꽃으로는 유일하게 박해를 받기도 했다. 험난한 역사 속에서 우리 선각자들은 나라꽃 사랑을 민족혼을 일깨우는 표상으로 앞세웠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눈물겨운 무궁화 사랑에도 정작 이 땅에서는 나라꽃을 별로 볼 수 없는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국가 정체성의 표상이 될 수 있는 나라꽃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교육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정부청사 관공서 학교 국립공원에서부터 무궁화동산을 만들어 심기를 솔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궁화의 올바른 학명을 찾는 일이라 자생지가 ‘시리아’가 아니라 ‘코리아’임을 밝혀 정당한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무궁화에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무궁화가 아침 이슬을 머금고 우아하고 청초하게 피는 다섯 개의 붉고 하얀 꽃잎과 자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정열적인 붉은색은 세계 속으로 발전하는 우리민족의 기상이라 할 수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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