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윤옥의 책 ‘시를 읽는 즐거움’
아침을 열며-이윤옥의 책 ‘시를 읽는 즐거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28 15:4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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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이윤옥의 책 ‘시를 읽는 즐거움’

좋은 책을 발견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이윤옥의 평론서는 책인데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읽는 맛도 탁월하다. 더 귀한 건 평론이라면 어렵겠거니 하는 심경을 단번에 불식시키는 그녀의 적확하고 살뜰한 평론을 읽는 재미인 것은 두 말 할 필요 없겠다. 함께 그림을 곁들여 준 김선두 화가의 그림시를 보는 건 또 다른 의미와 재미가 있는 일이라 그에 대한 소감은 후일을 기약해야겠다. 또한 이 지면에서 <시를 읽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재미와 의미는 방대하다. 다만 여기서는 좋은 시와 그림을 보여준 데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정도가 되겠다. 좋은 시는 어찌어찌해서 좋다는 이야기를 정말이지 진솔하고도 맛깔스럽게 전해준다.

책을 열고 작가의 말이 적힌 쪽을 펴면 노오란 바탕에 ‘시와 그림이 나누는 행복한 대화’ 라는 말이 읽는 사람 마음을 환하게 열어준다.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작가가 소개해주는 첫 번째 시를 읽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김종삼 시인의 ‘묵화’란 작품인데 시가 짧으니 전문을 보자.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이에 대해 이윤옥 평론가는 단호히 말한다. “나는 김종삼이 좋다. ‘묵화’ 때문에 좋다. 그의 시는 짧아도 길고 간결해도 복잡하다. 짧고 간결한 것은 김종삼의 시요, 길고 복잡한 것은 시를 읽는 독자의 심회다” 이 간결한 시만을 읽을 때는 마음만 먹먹하다가 해설을 읽고는 인생을 알 듯했다.

바로 이어지는 시는 정양의 ‘토막말’이다. 그 토막말이라는 게 ‘썰물진 모래밭에 한줄로 쓴 말’로 ‘정순아 보고자퍼서 죽것다XX’ 그 다음 행에서는 ‘XX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가 이어진다. 해설을 읽기에 앞서 이 시를 읽고 역시 이윤옥이라는 평론가에게 감사했다. 이렇게 좋은 시를 읽게 해주었으니까. 해설을 읽곤 소설을, 게다가 재미진 이야기를 마구마구 쓰고 싶어졌다. 이처럼 탁월한 작품들은 생산욕구를 마구마구 돋우기 마련이다.

이후로 시와 해설들 역시 한 글자도 빼기 싫은 주옥같은 글들이 이어진다. 그 중에 심재상의 ‘미모사 1’은 한 편의 논문이다. 일상적 문학적 은유에 대해서 그리고 ‘미모사 1’에 대해서 비교적 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건드리면 손을 완벽하게 오므리는 미모사의 닫힘과 폐곡선과 그것들의 열정에 대해 시와 해설 공히 매우 밀도 있고 정열적으로 이야기 한다. “연인들의 포옹은 완강하기 그지없는 폐곡선이다” 그 완강한 포옹이 내 지나온 어디쯤 있었을까?

아직 등단하기 전 아주 열심히 습작하던 중에 일간지 리뷰를 통해 알게 된 김현 선생님 평론서들을 신명나게 읽었고, 그를 통해 박상륭 선생님을 알았고 나는 비로소 작가가 될 수 있었는데 처음 구입한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는 무려 25쇄된 책이었다. 그 영웅적 명작이 스물다섯 번 인쇄되도록 난 토끼처럼 나무그늘에서 주야장창 잠이라도 잤더란 말인가! 마찬가지로 이 명저 <시를 읽는 즐거움>이 출간 십 수 년이 넘도록 못 알아본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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