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도민칼럼-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12 15:55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마음도 몸도 가두고 사는 요즘 안녕하시냐는 인사가 무색하지만 지리산은 여여하고 섬진강은 유구하다. 사람들은 허둥대지만 자연은 편안해졌다고 한다. 멀리 인도 루시쿨야 해변에는 올리브 바다거북 80만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해변을 찾고 영국 북웨일즈에는 야생 염소 떼가 칠레에는 퓨마가 콜롬비아에서는 돌고래가 나타났다고 한다. 멀리 볼 거 뭐 있는가? 별 볼 일 없던 세상, 차량운행 공장가동이 줄면서 여수의 밤바다에서도 별이 훤히 보인다고 이성배 시인이 전한다. 봄마다 골치였던 미세먼지 이야기가 요즘은 자주 들리지 않는다. 다 나쁜 것만은 아닌 게 우리네 살아가는 일상사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녀가 생각난다. 서울에서 정신없이 살아오다 실직을 당한 친구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내려가 사는 내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어느 날 좀 놀러가도 되겠느냐고 해서 나야 당연히 흔쾌하게 오라고 했다. 막상 놀러가겠다고 했지만 노는 것이 쉽지 않은 듯 친구는 내내 서울에 가서 할 일만을 이야기 했다. 일을 하던 사람들은 관성에 의해서, 멈추는 것이 쉽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쉬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으면 망연자실해 질 수밖에 없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지만 엎어지면 아파서 울게 된다. 그래도 제대로 일어서서 가려면 엎어졌을 때 툭툭 털고 너무 벌떡 일어서기보다 좀 울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누워서 빈둥거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멍 때리기’ 대회가 있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우리나라에서도 퍼포먼스처럼 열리고 있다. 쉴 사이 없이 머리를 써야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뇌도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산업 사회로 들어서면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표어는 사람들을 계속 움직이게 했다. 가만히 있으면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기에 움직이거나 행동해야만 존재감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 것일까? 핸드폰이라도 봐야 하고 게임이라도 해야만 살아있다고 믿는 것일까? 이제 선거도 끝나고 정치인도 아닌데 정치적인 이슈에만 눌려 있는 사람들, 오로지 먹고 사는 ‘돈돈돈’으로만 일상을 메우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의외로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움직이지 않고 있기가 쉽지 않다.

친구는 한 달을 쉬겠다고 야심차게 내려왔지만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혼자만 뒤처지는 게 걱정되었을 것이다. 세상은 네가 아니어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도리어 그녀를 불안하게 했을지 모른다. 일주일 만에 풀어놓은 짐을 주섬주섬 싸더니 급하게 일이 있는 사람처럼 올라가야할 구실을 열 가지도 더 대며 떠났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는 언니랑 술 한 잔을 마시다 어지럽다며 눕더니 그길로 세상을 떠났다고.

우리가 하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에 와서 이것저것 배워보고 싶다고, 돈 조금만 더 벌고 시간이 되면 오겠다고, 차도 만들어 보고, 싶고 그림도 배우고 싶다더니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던 그녀는 해보고 싶은 것만 잔뜩 말하고는 세상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나버렸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다 우선 여유 있는 시간을 먼저 만들어 놓겠다고 했지만 삶은 절실한 것부터 먼저 손이 간다. 무엇이 우리 인생에서는 가장 절실할까?

이 코로나 정국에 앞으로 실직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불안하고 힘든 시간 앞에 놓였을 때 너무 울지도 너무 벌떡 일어서지도 말고 좀 누워서 머리도 비우고 마음도 비우고 관계도 비우고 뒹굴 거렸으면 좋겠다. 가장 적은 돈을 들여 자신을 힐링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 시기를 편안히 넘기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살던 습성, 도시에서 싸우던 성질 좀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리산, 섬진강 자락에 사는 나는 그런 이들이 와서 쉴 수 있도록 별 볼일 없는 세상, 별이나 보여주려고 ‘예술곳간몽유’의 마당을 쓴다. 이번 주말에는 권순웅 선생의 야생초반과 이원규시인의 문예창작반이 섬진강자락에서 열리니 열심히 빗질해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