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궁을가
아침을 열며-궁을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13 16:1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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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궁을가

“…애고 애고 저 백성아 간단 말이 어인 일고, 고국 본토 다 버리고 어느 강산 가려는가…부모처자 다 버리고 길지(吉地)찾는 저 백성아, 자고창생(自古蒼生) 피난(避難)하여 기만명(幾萬名)이 살았던가…, 삼재지화(三才之化) 부제(不齊)하니 세상사가 착란이라…가고 가는 저 백성아 일가친척 어찌할꼬…차시구복(此時九覆) 불원(不遠)하니 천하태평 절로 된다…악자망이(惡者亡而) 선자복(善者福)…지성으로 본심하면 외국병(外國病)이 불범(不犯)이라…너는 좌선(左旋) 나는 우선(右旋)  궁을(弓乙)대로 놀아보자…인의예지 어진 마음 상인해물(傷人害物) 전혀 말고 오복성(五福星)이 내 몸이라”

궁을가의 일부다. 글 순서에 얽매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궁을가를 어느 시대 누가 지었는지 대하여 말들이 분분하다. 김주희(金周熙)가 지었다고도 하고, 용호대사(龍虎大師)가 지은 것을 김주희가 긴 노래로 다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어떻든 궁을가가 나타난 시기는 스산하게 불안한 시대였을 것으로 본다. 살고 있던 곳의 앞날이 망망하고 내일 일을 헤아릴 때 정신이 아득하여 정든 고향을 등져 떠나는 모습이다. 제 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신비로운 길지를 찾아 부모처자 다 버리고 화급하게 떠나는 처연한 모습이다. 참으로 암담한 처지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 궁을가는 동학군이 새 세상을 염원하며 불렀던 노래 중의 하나기도 하다. 특히 조선말기 구한말에 들어 이 궁을가가 세간에 널리 퍼졌던 것 같다. 현존의 ‘궁을가’는 1932년 경상북도에 있었던 상주동학에서 간행한 <용담유사>권 36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궁을가를 지은 용호대사는 북창 정렴(鄭磏, 1506-1549)이다. 조선명종 때 학자로서 충청도 온양사람이다. 그는 44살에 죽었고, 그가 죽은 43년 후에 임진왜란(1592)이 발발하였다. 관리이고 도인이다. 이 사람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는 숱하게 많다.

대낮에도 그림자 없는 귀신, 배우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천재, 하늘과 통하는 천인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새소리와 짐승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으며, 풍수에 통달하고, 사람의 목숨을 늘일 수 있었으며, 심신수련의 달인으로 전해진다. 중국도사에게 “우리나라에는 삼신산이 있어서 낮에도 도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항상 볼 수 있으니 무엇이 귀하겠는가?” 하며 신선이 되는 단계를 설명하니 중국도사가 슬그머니 피해버렸다는 전설도 있다. 하지만 단명팔자인 친구 윤두수의 장수비결을 알려준 바람에 천상의 신선이 북창의 수명을 윤두수에게 주어서 윤두수는 장수하였지만 정작 북창 자신은 44세로 단명하였다.

그러나 한편, 그 옛날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였던 것들을 하나하나 손꼽아 보면 이미 우리는 희희락락 여유작작의 신선(神仙)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예컨대 생이지지(生而知之)라는 말이 있다. 배우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을 천재라 부러워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구태여 배울 필요도 계산할 필요도 판단할 필요도 없다. 이미 다 알도록 다 갖춰져 있을 테니까. 생명공학의 발달로 재수 없으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억지로 이백 살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 옛날 신선이 권두운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같은 이야기는 비행기 티켓 한 장이면 끝나고, 축지법을 쓰고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의 전설은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만 있으면 한 방에 해결된다. 기러기 철새 까마귀 참새의 습성을 그들 날짐승 스스로는 몰라도 사람들이 미리 이미 다 예측하고 대비한다. 한여름엔 에어컨이 너무 세어서 냉방병에 걸리고, 얼음조각은 귀찮아서 내어버릴 정도다. 폰 하나로 앉아서 천리를 보는 게 아니라 만 리, 수 만리 것들도 보고 듣는다. ‘......’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든 고향 정든 사람을 떠나 저마다의 이상향과 자기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지를 찾아 타관으로 떠난다. 말도 풍습도 낯설어 괴롭기만 한, 먼 이국(異國)으로 떠났고 지금도 떠나고 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19에 즈음하여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조망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단정하고 롤 모델(role model)로 삼아 앙망해 마지않았던 나라들이 우리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너무나 황망(遑忙)하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지금 눈으로 보고 있다. 물론 한 단면이기는 하지만 이제 시운은 우리가 표준이 되고 우리가 롤 모델이 되어야 할 때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위대한 건국신화를 단군신화 외에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하여 ‘궁을가’는 조선 땅을 떠나지 말 것과 길지 찾아 헤매지 말 것을 간곡하게 권유한다. 1986년 일본 동해대학 교수였던 사세휘는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고 한국에 지게 되는 이유>에서 2010년 이후 ‘한국의 시대’를 예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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