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부부(夫婦) 항일투사
진주성-부부(夫婦) 항일투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0 16: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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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부부(夫婦) 항일투사


남편과 부인이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한 이들이 많다.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준엽 선생은 일본 경응대학 동양사학과 재학 중 일제 학도병에 징집되었을 때 부대를 탈출해 장준하, 신현창, 윤경민 등과 광복군에 입대해 제 2지대에 소속되어 특수훈련을 받았다.

광복 후 중국과 대만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귀국해 1949년부터 고려대 부교수, 교수가 되고 1982년부터 고려대 총장이 되었다.

부인 민영주는 항일투사 민필호의 장녀로 1940년 9월 한국 광복군에 입대해 임시정부 내무부원이 되고 광복군 제 2지대 소속으로 활동했다.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도 부부 항일투사로 유명하다.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문의 기자로 주시경 선생과 함께 기영잡지 편집인으로 <을지문덕>, <이순신>, <대동사 천년사>등을 저술하고 임시정부 발기인에 동참하고 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천고> 잡지를 발간하고 이어 <조선상고사><조선상고문화사>등을 발간했다.

부인 박자혜 여사는 1919년 3월 각처에 유인물을 배포하고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사들의 편의 제공과 연락을 담당했다.

조시원 선생은 광복회 회장과 경기도 양주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데 1935년 조소앙, 홍진 등과 함께 잡지 <진광>을 발간하고 한국 독립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1943년에는 광복군 부관처장 대리와 교관을 거처 대령(정령)으로 복무했다.

부인 이순승 여사는 1940년 한국 독립당 창립에 참여하고 여성동맹 강북구당 집행위원이 되었다.

조선 혁명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학규 선생은 1935년 민족혁명당 중앙간부 1940년 광복군 참모처장과 의정원 의원이 되었고 제 5지대장으로 활동했다.

부인 오광심 여사는 자매가 항일투사가 되었고 민족혁명당 부녀부 차장이 되었고 광복군 제 3지대 간부로 활동했다.

김좌진 장군은 무관학교 출신으로 대한광복회 일원으로 활동중 체포, 3년간 옥살이를 했다. 1918년 8월 북로군정서 제 2연대장이 되고 1920년 10월 일본군 3000여명을 토벌한 공적이 있다.

부인 나혜국(오)도 독립군의 의식주를 담당한 여장부로 기록된다.
김영주 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전사하고 그의 부인 남자현 여사는 예배당과 여자교육회 20여 곳을 설립하고 1932년 9월 국제연맹 조사단에 혈서와 두 손가락을 싸서 보내고 피체되어 옥중(獄中) 순국(殉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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