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아내가 처녀 같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아내가 처녀 같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0 16:0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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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아내가 처녀 같다


논두렁에 처박힌 자동차다
후진밖에는 길이 없는 막다른
그곳에서 허허벌판 보드라운 흙 속에
발목을 처박고 바퀴가 헛돈다
헛돈다 추수 끝난 황무지

어머니는 나를 낳았지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불행의 증인이다 나도 그 나이 때쯤 되면
이 세상에 한마디 할거다, 울면서

2㎞ 논길을 걸어온 아내가 처녀 같다 나는
괜시리 즐겁다 어두컴컴한 창에다
자꾸 얼굴을 들이미는 망아지

(박판식, ‘가족에 대하여’)

오늘은 5월 21일 가정의 달이자 부부의 날이다. 오늘 소개되는 시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박판식 시인의 ‘가족에 대하여’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체적인 의미를 두지 않고 읽어나가 버리면 연결이 잘되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유명한 시인이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숨은 메타포(metaphor)가 있으며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연결이 잘되지 않는 말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결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시는 3연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원래는 연의 구분이 필요 없는 작품인데 시 해석의 편리를 위해 시인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필자가 임의로 3연으로 구분해 보았다. 만약 시인께서 이 글을 보고 있으시다면 용서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우선 초장을 보자, 한 번쯤은 경험을 해봤을 일이다. 신나게 달리고 가다가 진흙 속에 바퀴가 빠졌다. 웽웽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최대한 밟아보지만, 바퀴만 점점 더 깊이 빠질 뿐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을 칠수록 자신의 몸이 점점 더 깊게 아래로 빨려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두 번째 연은 어머니는 나를 낳았는데, 나는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인데 일상어로 본다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말이지만 시에서는 이런 것을 ‘허용어’라고 해서 생물학적으로는 내가 태어났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태어남을 부정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아버지는 불행하게 된 증인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불행하게 된 것은 나의 불행을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으로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어요”라는 말로 항변하는 말이라고나 할까…이로 보면 시인의 어릴 적 가정생활은 매우 불우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상당히 도발적인 말이다.

시인은 어떤 의도에서 이런 복잡한 표현을 했을까? 답은 세 번째 연에 들어 있다. 내가 빠진 수렁텅이 논길까지 불원천리하고 와서 힘이 되어준 사람은 아내로, 아내는 시인의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사에 비해 즐겁게 해 주는 현실적인 존재, 즉 수렁에 빠진 것과 같은 현실에서 나를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아내라는 말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연은 가정적인 상황에서 시인이 처한 현실을, 두 번째 연에서는 시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아버지 어머니의 태도를,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연에서는 아내의 태도를 나열한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즉, 우리는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는 잦은 난관에 부딪힐 일이 있겠다는 가정으로 봤을 때, 나의 절대적인 후원자이며 믿을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는 뜻이니, 시인이 아내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자동차는 내가 탄 자가용 혹은 나 자신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번 시는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파괴로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부부 사이로 중요도가 넘어가는 신세대 부부의 풍속도를 설명한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감상하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의 묘미 중 하나가 일상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수께끼의 해독이랄까, 퍼즐 맞추기라고나 할까, 그런 것들로 즐거움과 재미를 더해 준다는 점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유익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함축적인 의미의 시어는 일상어보다 짧고 섬세하게 하며 깊이 생각할 여지를 두고 있으니 이런 매력으로 시인들이 시를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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