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삭망월(朔望月)
도민칼럼-삭망월(朔望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6 16: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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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삭망월(朔望月)

얼마 전 후배의 어머니가 오랜 지병을 앓다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식에 발인까지 함께 했다. 가까운 지인의 경우 가족들만 참석하는 발인에도 나는 기꺼이 간다. 한 사람으로 이 세상 살다 가시는데 그 삶을 진정 애도하고픈 나름의 의식이다. 요즘은 생장을 잘하지 않는다. 공동묘지에 묻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선산이 있어도 민가와 가까우면 꺼리는 분위기가 있어 쉽지 않다. 후배도 어머니를 화장(火葬)했다. 오랜 시간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받다보니 방안에만 계셔서 당신 소원이 세상을 훨훨 날고 싶다고 공중에 뿌려달라고 하셨단다.

사는 문제만큼 죽는 문제도 쉽지 않은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공중에 흩날리고 싶다고 그리 할 수 없다. 함께 사는 세상이니 환경법도 저촉이 되고 장사(葬事) 등에 관한 법률도 문제가 될 것이다. 오랫동안 법을 공부해 온 금산의 수필가 임영기 작가에게 물으니 법이 실상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단다. 어차피 장례를 치루면 장례지도사가 알아서 해주다보니 우리가 법까지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알고 싶어 물었다.

법에 의하여 유골 뿌리기는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으나 지자체장 등에 의해 허가된 장소에서는 뿌릴 수 있단다. 무단으로 뿌릴 시는 당연히 과태료가 부과된다. 만약 후손이 본인 소유의 땅에 묻을 때에는 지면으로부터 30센티 이상의 깊이에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묻되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생분해성 수지제품 또는 전분 등 천연소재로서 생화학적으로 분해가 가능한 것을 사용하고 용기를 사용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흙과 섞어서 묻어야 한단다. 바다에 가서 뿌리는 바다장도 있는데 인천과 부산 앞바다에서 가능하고 배를 타고 나가서 정해진 좌표에서 유골을 뿌리되 비용은 30에서 45만원 정도 든다는 말을 전한다.

5월23일부터 음력으로는 윤달이다. 윤달은 삭망월(朔望月)이라 하여 썩은 달 혹은 죽은 달이라고도 하는데 음력 12달은 한해의 태양년보다 약 11일이 짧아서 음력을 17년 계속 쓰면 5월에 눈이 오는 등 계절과 너무 어긋날 수 있다. 그래서 19년 태양년에 7개월의 윤달을 둔다. 달력에 보면 음력 표시에 윤달이 대충 3년 정도에 한 번씩 들어있다. 윤달에는 귀신이 없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신(神)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어서 그때는 불경스러운 행동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는데 이 때문에 윤달에는 이장(移葬)을 하거나 수의(壽衣)를 하는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 코로나로 정신이 없어도 일상은 계속되기에 요즘 포클레인 기사님들이 바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새로 묘를 쓰기보다 주로 흩어진 조상 묘를 합수하거나 더러 들어갈 자리를 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각각이지 않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은 죽음을 통하여 더 깊고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바쁜 세상살이 죽음을 생각한다. 슬프거나 아픈 마음이 아닌 담담함을 가져보려고 애쓴다. 아직 멀었다고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 명제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오만해질 수 있고 건성으로 살 수 있기에 더 죽음을 생각한다. 죽고 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사후세계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선 내 자식들에게 기억되는 모습도 있고 후배, 제자, 젊은 지인들이 기억하는 한 죽어도 다 죽은 것은 아닐 것이다.

사는 동안 부귀영화를 누려도 죽은 후 비난을 면치 못하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억울한 죽음을 저지른 지도자가 칭송을 받기란 어렵다. 애써 쌓아올린 명예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이들도 있다. 곧 죽음을 앞두었다는 것을 모르고 자손들에게 교육과 덕을 베풀지 않아 싸움하는 판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윤달, 삭망월(朔望月)이다. 삭망월(朔望月)은 죽은 달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혹은 삶을 반성하는 달이어야 하지 않을까? 불로장생은 없다. 죽음을 면해보려고 종교에 귀의하지만 자칫 사이비에 빠지는 이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고 화합하는 것이 아닌 분란을 낳는 모습도 많이 보아왔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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