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일본인과 성문화
진주성-일본인과 성문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8 15: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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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일본인과 성문화

노출과 유희, 성에 관한 한 일본인들은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들지 않는다. 한국인의 눈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본의 성풍속을 통해 일본 이해의 깊이를 더한다. 남자들은 색광이며 여자들에겐 정조가 없는 나라 일본 남신과 여신의 결함으로 국토가 생성되었다는 신화를 가진 일본인들에게 성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기생도 1패에서 3패까지 구분하였다. 1패는 제1급의 기생으로 노래, 시, 그림을 공부하여 관기로 활약하면서 고관들의 잔치에 참여하여 흥을 돋우었다. 2패는 “은근짜”라 하여 은밀히 매춘을 하는 기생의 무리이고 3패는 일방적인 창녀를 지칭했다. 일본 매춘부에 대한 별칭이 400여 가지가 넘는다. 부엌데기 매춘녀, 밤매, 기모노 등 일본 발전의 뒤안길에서 일본 여성들은 눈물겨운 육체적 헌신을 했다.

16세기 때의 히데요시(풍신수길)는 천하를 꿈꾸었으나 실패하고 색을 몹시 밝혔다. 본처나 측실이외에 자기 부하들의 부인을 넘보고 주종관계의 윤리가 생명만큼 중요시 되던 시기였기에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놀부 심보였다. 히데요시는 160cm의 키를 가진 장군으로 본처 1명, 애첩 16명, 측실 300명을 가지고 있으며 52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조선 시대의 노비법도 어머니가 천민이면 그 소생도 천민이 되었다. 그만큼 가정교육에 있어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 일본에서는 ‘일도(一道) 이비(二婢) 삼첩(三妾) 사기(四妓) 오처(五妻)’ 라는 말이 있다. 성 상대로서 으뜸은 임자 있는 여인을 훔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자신이 부리고 있는 사람, 예컨대 가정부 여사무원 세 번째가 애첩, 네 번째는 호스티스 마지막이 백년해로를 약속한 부인이라는 것이다. 일도이비삼첩사기오처의 흉내를 내려면 보통 간이 큰 남자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터이다. 스탈린도 키가 160cm 정도의 단구였으나 그 역시 큰 것을 좋아했고 정력이 강하여 ‘크레믈린 여인들’을 거느렸던 숱한 무용담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하여 온다.

일본의 이등박문도 키가 160cm 여자 밝히는데는 당대 제일이었다. 히데요시는 본처 1명, 애첩 16명, 측실 300명을 거느렸지만 오십 줄에 애첩에서 애가 태어났으나 3살 때 요절하고 말았다. 요즈음 우리주변에서도 간 큰 남자들이 있지만 여성들의 권리가 비약적으로 신장되고 있다. 21세기는 여성들의 시대로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 남자들의 푸념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 일본인의 혼욕과 4촌간의 결혼 풍습이 남녀칠세부동석과 동성동본결혼을 금하고 있는 우리민족과는 문화적 차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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