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호국의 등불
아침을 열며-호국의 등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8 15: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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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
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호국의 등불

바이러스 전염병 공포로 세계가 공황에 빠졌다가 조금씩 진정의 기미를 보이자, 사람들은 적막하기까지 했던 거리에 생업이나 산책이든 여러 이유로 붐비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실 얼마나 불편 했던가! 중증 상미의 노병도 전동휠체어에서 벗어나(지팡이에 의지해) 져버린 벚꽃나무가 길게 늘어선 아파트 광장을 쉬엄쉬엄 걸어 보았다. 얼굴에 와 닫는 햇살의 온기와 상큼한 바람 냄새가 정말 좋았다.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졸았나 보다. 흔들리는 듯한 느낌에 퍼뜩 눈을 뜨니 언제나 그림자 같은 아내가 따스한 눈길로 내려 보고 있었다. 간밤에 지독했던 통증의 여운도 사라졌고, 숨 쉬고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일어나 집에 오니, 매월 오는 육군지가 반겨 주었다. 첫머리에 호국의 등불 제하의 중부최전선 DMZ 철책선과 초병의 모습이 실려 있어 옛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반세기 전 67~68사이, 15~6개월을 그곳에서 졸병생활을 했으니까…물자가 부족했던 당시의 병영은 몹시도 춥고 고생스러웠다. 그러다가 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벌어졌고, 전선엔 숨 막히는 긴장이 감돌았다. 월남에서도 구정공세가 대내적으로 벌어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차출명령을 받았다.

이왕지사 태권도 교관단에 합류하고픈 마음이었으나, 소총수로 부분대장에 이어 분대장이 되어서 첨병(簽兵)을 이끌었다. 20개월을 이국만리의 험지에서 악산 정글을 누볐던, 이제는 추억을 회상하는 병든 노병(老兵)이라니 세월이 참 야속하다. 이번에 코로나19를 잡으러 대구로 달려갔던 의료진들, 그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공로를 가로채서 자화자찬 하는 위정자는 정말 꼴 보기 싫다.

우러러볼 사람 중에는, 전쟁(6·25)시 숨져간 무명용사들이 있다. 유격대원도 있었고, 지게부대도 있었으며, 학도병도 있었다.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있게 한 새마을 운동의 주역들도 있다. 그 종자돈은 어디서 왔을까?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 원양어선 선원들, 서독으로 간 광부와 간호사, 열사의 땅 중동건설근로자가 있었고, 가장 큰 기여를 한, 피와 목숨을 바친 월남참전용사가 바로 그들이다. 군부독재 폐해를 몰아낸 민주화도 있지만, 온갖 감언이설로, 앞에선 국민을 팔고 뒤로는 탐욕에 젖는 이중성을 보았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 유유상종의 그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낀 국민이 많다. 강남좌파 말이다. 이미 지난 일에 연염함은 소용없는 일이지만 매복을 두려워하며 적진을 탐색하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 전우를 위해서는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전우애, 국민을 위해서 희생을 마다않는 의료진의 용기, 그것은 호국의 등불이다. 권력자 불의를 합법화로 꾸미는 지금의 정치꾼들은 절대로 호국의 등불이 될 수가 없다. 심장을 뛰게 하는 혈맥처럼 호국의 영웅들이 있어 나라는 번영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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