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민주항쟁 기념행사 진주서도 열린다
유월민주항쟁 기념행사 진주서도 열린다
  • 강미영기자
  • 승인 2020.06.01 18:13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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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길 걷기 행사…17일 경상대서 기념비 제막식
경상대 민주광장에 세워진 유월민주항쟁 기념비
경상대 민주광장에 세워질 유월민주항쟁 기념비

올해 유월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진주에 소재한 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이하 경남민주시민연대, 정현찬 대표)가 유월항쟁민주주의의 길 걷기와 민주주의유월항쟁 기념비 제막식 등의 행사를 마련한다.


경남민주시민연대는 진주와 서부경남 지역에서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했던 이들과 비록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유월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유월항쟁의 정신을 되새기고 현재적 의의를 살릴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2007년 6월민주항쟁 20년 주년을 맞아 서부경남유월항쟁기념사업회 결성하고, 2012년에 경남유월항쟁기념사업회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2017년 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단법인 등록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는 6월7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해설사와 함께 진주 6월 민주항쟁의 길을 따라 걷는다. 진주교육청에서 출발하여 진주경찰서, 중앙광장사거리, (구)진주시청(현 청소년수련관) 등이 코스다. 누구나 참가비 없이 참여할 수 있고 기념품과 점심도시락, 간식도 준다.(문의처 010 3804 8851 이정옥)

열흘 뒤 6월17일 오후 2시 가좌동 경상대 민주광장 일원에서 유월민주항쟁 기념비 제막식을 한다. 밑변 2300㎜, 높이 1600㎜의 삼각형 모양의 자연석이다. 경남도(김경수 지사)의 지원을 받았다.

앞면과 옆면에 신영복체로 “민주주의 / 유월항쟁 / 기념”, ”탁치니 억하고 / 쓰러졌다는 / 6월은 뜨겁고 / 찰진 함성 / 헛되지 않았네”를 새겼다. 뒷면에는 “1987년 경상대 학우들의 투쟁이 전국적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기에 여기 비를 세워 기념함 / 경상남도(지사 김경수) /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를 새겼다. 특히 옆면에 새긴 글은 고 박노정 시인이 생전에 유월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여 쓴 시 ‘그때 그 출발의 첫 맘 들게’의 일부다.

6월 17일 오후 2시 경상대 민주광장에서 제막식을 할 예정이다. 알려진 것처럼 국가가 지정한 유월항쟁 기념일은 6월 10일이다. 그런데 6월 17일로 잡은 연유가 궁금했다. 진홍근(경남유월항쟁연대 이사, 경상대 83학번)씨에게 물었다. “1987년 6월 17일은 민주주의유월항쟁 과정에서 후반기를 점화한 거국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미디어오늘 2015년 12월 06일자 「서울만 대한민국이 아니다」기사에서는 1987년 6월 17일의 사실과 의미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서울과 전국 주요도시에서 6월 10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후 나흘간 계속되던 명동성당 농성이 14일 밤 해산되면서 15일부터 서울의 시위는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때 경남 진주에서 전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 시민과 대학생들이 15일 1만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시위를 벌여 시내 거리를 완전 장악해버렸다. … 17일 … 시위대가 경전선 철도와 남해고속도로를 점거하고 LPG 운반트럭 2대를 탈취해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지역도시의 투쟁은 18일자 전국 주요언론은 물론이고 워싱턴포스트와 타임 등 외신에도 대서특필된다. WP는 ‘S. Korea Protests Grow In Provincial Cities(지방도시 시위 증폭)’라는 제목을 뽑았고, 조선일보 1면 머리는 ‘남해고속도 3시간 장악’, 사회면 머리는 ‘지방시위 갈수록 격렬’이었다”

대통령직선제, 지방자치제, 헌법재판소, 경제민주화 등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는 결정적 과정에는 유월민주항쟁이란 피땀 어린 희생이 있었다.

진홍근 이사에게 경상대 민주광장에 유월항쟁기념비를 세우는 애로가 없는지도 물었다. “전해들은 바로는 올해 6월 6일로 임기를 마치는 총장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어 하셨으나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 뒤의 반응이 좀 … 어쩌면 기념비 없는 제막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1987년 민주주의 6월항쟁은 1919년 3.1운동과 1960년 4.19혁명을 계승한 시민 학생들이 희생하여 일군 민주주의혁명”이라며 진홍근씨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때 그 출발의 첫 맘 들게

박 노 정

1. 1987년은 아마도 내가
10년 떠돌이 끝에
숫제 기도요 울음이던 어머니 말씀 좇아
남들처럼 살아가는 짓시늉에 빠질 때였네
장래 촉망, 탄탄대로를 질주하던 후배녀석
돌연 길거리로 나섰다가 신세 조진 해였구나
통일의 그 날 결혼식 올린다던 녀석도
지금껏 소지를 접고 혼자 주름 늘고 있다지

2. 아무렴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유래없는 해학(?)에
뭇생명이 울고 울며 불어자치니
그 해 6월은 밀물과 썰물이
학생과 넥타이부대, 구경꾼이 함께 얼싸안은
일품의 하모니로 치를 떨게 했다네
누군 쟁취라 하고 누군 항복이라 했던
총총 500만, 뜨겁고도 찰진 함성 헛되지 않았네
그때 막 신접의 나 덩달아 짜릿했던가
그때 그 출발의 첫 맘들게
삼보일배로 다가서서 절 하고 싶네
하늘마음 계심에 다시 벅차오르네

3. 이즈음 난 너무 피둥피둥 하다네
감옥도 징벌도 없는 세상 치레에 겨워
생땀을 자주자주 흘린다네
때로 맨몸에 햇살 가득 부비고 싶네
벌컥벌컥 찬물 들이키고 싶네
온 몸에 확 찌뜨리고 싶다네

강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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