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농사 3년만에 희망 가득한 휴양마을 변신
연꽃농사 3년만에 희망 가득한 휴양마을 변신
  • 글 김봉철 ·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2.07.3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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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용 비실마을 농촌체험휴양마을 추진위원장

▲ 정성용 비실마을 농천체험휴양마을 추진위원장은 본지와의 대담을 통해 “비실마을에 연농사를 시작한 이후 마을은 소득증대, 환경회복, 휴식시간 증대, 땅값 상승등의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진주시 명석면의 끝자락 비실마을. 예전에는 거지도 마을입구에서 돌아가곤 했다는 비밀을 골짜기 비실마을이 요즈음 화제다. 벼농사 위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연꽃농사를 시작하면서 마을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매년 연꽃이 필 때면 마을축제가 생겨나고 동네는 소망등으로 환하게 밝혀진다. 마을의 소득도 벼농사 시절에 비하면 3배이상 늘었다. 과거에는 모내기, 농약치기, 수확으로 바빳던 일상이 이제 연꽃의 재배로 노동력이 과거 10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연꽃으로 마을 환경이 바뀌자 아름다운 동네 모습으로 인해 동네 곳곳에 예쁜 집들이 들어서게 됐다. 마을이 아름다워지자 외지인들이 들어와 예쁜 집들을 짓기 시작한 것. 예쁜 집들이 늘어나자 방문객들도 많아지고 땅값이 올랐다.
연꽃 하나가 가져온 마을의 변화는 이처럼 여러 가지이다. “누구 하나 거창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을의 변화는 그 어느 농민운동에 비해서도 뒤질 것이 없을 정도로 근본적으로 마을이 바뀌었습니다” 초기부터 마을의 변화를 이끌어 온 정성용 비실마을 농천체험휴양마을 추진위원장(67)의 말이다. 농촌을 변화시키는 데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철저한 계획과 내실 있는 추진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게 정 위원장의 소신. 실제 이 마을에 있는 40호의 가구중 1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꽃을 심는다. 그만큼 마을이 단결돼 있다는 의미이다. 마을의 단결이 있었기에 마을 전체 농사가 벼농사에서 연농사로 바뀔 수 있었다는 게 정 위원장의 진단이다.
비실마을은 매년 7월 말 연꽃 문화축제를 개최한다. 마을 전체가 연꽃 단지로 변화하자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연꽃 축제를 열기 시작한 것. 연꽃 축제는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다. 첫해는 연꽃 단지를 만드는 데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인기를 끌어 올해부터는 제대로 된 연꽃 축제를 열어가고 있다. 벼농사를 하고 있었더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변화이다. 연꽃으로 마을이 아름답게 변하자 여기저기서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사람들에게 마을을 제대로 알리고 연과 관련된 다양한 식품을 만들어 연을 활성화 하자는 의미에서 올해 축제가 시작됐다.
전국에서 많은 연꽃 축제가 있지만 비실마을 축제는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또 비실마을 연꽃 축제는 농사를 기반으로 하는 축제이다. 다른 연꽃 축제가 관광의 의미라면 비실마을 연꽃 축제는 농사를 짓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농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작은 축제로 시작되고 있지만 앞으로 연가공 공장이 들어서고 하면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희망이다. 비실마을에 연이 들어오면서 마을주민들의 희망도 그만큼 커져가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연 농사를 통해 비실마을은 소득이 증대하고 환경이 살아났으며 주민들의 휴식시간이 늘어나고 마을환경이 정비되어 아름다운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또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어나 땅값이 상승하는등 일석 오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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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단지 총 4만3천평 경남에서 최대

-비실마을의 정식명칭이 무엇인가
▲정확한 명칭은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비실마을이다. 옛적부터 비실마을로 불리어 오고 있는 데 골짜기가 깊어서 비밀의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불렸다. 국도에서 마을 끝까지 약 10리 정도 된다. 이렇게 골짜기가 깊다보니 옛적에는 거지들이 마을 입구에서 마을이 없는 줄 알고 돌아갔다고 한다.
-주민은 몇 세대나 되나.
▲40호에 약 120명 정도 된다.
-연꽃을 심은 면적은 얼마인가.
▲13ha이다. 약 4만3천평 정도 된다.
-연을 심은 게 언제인가.
▲2010년 4월이다.
-계기가 무엇인가.
▲이 마을은 골짜기에다 진흙바닥이어서 하우스 농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벼농사를 해 왔다. 그런데 벼농사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작물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에 이 마을에 사는 조재규 교육위원의 사모님이 연을 심어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연을 심게 됐다.

2010년 정부의 지원으로 연을 심기 시작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나.
▲당시 시장을 만나서 연을 심으려고 하는 데 종자가 비싸다.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시에서 6500만원, 도에서 3000만원, 자부담 2500만원으로 2만1000평의 논에다 연을 심었다. 그리고 작년도에 2만2000평을 더 심었다. 그래서 총 4만3000평이 된 거다.
-수확은 언제부터 했나.
▲연은 바로 그해 수확이 가능하다. 2010년도에 수확을 시작했다. 연 수확은 9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시에 수확하는 벼농사에 비해 장점이 많다.
-수확과 판매는 어떻게 하나.
▲연농사는 한번 심어놓으면 노동이 필요 없다. 수확할 때 4분의 3만 수확하고 4분의 1은 남겨둔다. 그러면 다음해에 남은 뿌리가 자라서 전체를 메운다. 수확도 중간상이 알아서 한다. 논채로 연을 팔면 중간상인이 장비를 가지고 와서 수확해 간다. 그래서 벼농사 할 때 보다 노동이 10분의 일도 들지 않는다. 벼농사는 모내기 해야 하고 농약쳐야 하고 비료뿌려야 하고 수확을 해야 한다. 이 가운데 연농사에 필요한 것은 비료뿌리는 것 밖에 없다. 비료도 벼농사에 비해 적게 뿌린다. 따라서 노동이 거의 필요 없다고 보면 된다.
-노동이 적게 드는 것은 좋은 일인데 소득은 어떻게 되나.
▲연을 심으면 벼농사에 비해 약 3배 정도의 소득이 나온다. 연은 평당 3000원에 중간상에 판매하는데 벼농사는 2000원에 판매한다. 그런데 벼농사는 여기에 모내기 인건비, 농약값, 인건비, 수확기계 임대료, 인건비등이 포함된다. 그래서 사실 벼농사는 거의 소득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에 비해 연농사는 다른 비용이 들어갈 것이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벼농사에 비해서는 소득이 크게 높다고 보면 된다.

연농사가 벼농사 비해 소득이 3배 증가

-벼농사를 하지 않아서 남는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하나.
▲비실마을은 전통적으로 깻잎을 많이 심는다. 그래서 남는 노동력은 깻잎 농사등에 활용한다.
-처음 연을 심으려고 했을 때 주민동의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처음에는 상당한 이견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타작물을 심으면 평당 1000원의 보상비가 나오게 되면서 주민동의가 모아지기 시작했다. 2011년까지는 벼농사에서 타작물로 전환하면 보상이 나왔는데 올해부터는 없어졌다. 비실마을의 경우 시기에 맞게 타작물로 전환한 셈이다.
-연을 심고 나서 마을이 변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마을이 아름다워졌다. 벼농사는 어디나 흔한 풍경이어서 마을의 변화가 어렵다. 그러나 연꽃으로 마을전체가 바뀌자 마을의 모습이 특이해졌다. 그래서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늘었다. 찾아오는 사람들 마다 연꽃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마을은 마을 전체가 연밭이다. 마을의 특정부분만 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연밭이다 보니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다르다. 현재 경남에서는 가장 넓은 면적일 거다. 함양 상림숲 옆에 연밭이 조성돼 있는 데 우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을 전체가 특이한 풍경을 자랑한다.

연농사 후 마을에 예쁜 집 들어서기 시작

-마을에 보니 예쁜 집들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그렇다. 마을이 아름다워지다 보니 외지인들이 들어와 아름다운 집들을 짓기 시작했다. 마을에 김익현 선생이라고 목조주택을 전공하는 분이 계신다. 이분이 주로 집을 짓는데 정말 예쁜 집들이다. 그래서 마을이 더 아름다워졌다. 마을이 아름다워 지니 땅값이 올랐다. 연으로 인해 이중 3중의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들어오려는 외지인이 많나.
▲그렇다. 지금도 땅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또 변화는 어떤 것이 있나.
▲마을이 친환경적으로 변한 것이다. 벼농사 할 때는 농약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연 농사를 하면서 부터는 일체 농약을 치지 않는다. 그랬더니 올해부터는 반딧불이가 돌아오고 논에 우렁이 돌아왔다. 또 미꾸라지를 연밭에서 키운다.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보면 맛이 다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지금까지도 연으로 인한 마을의 변화는 적지 않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앞으로이다. 지금까지의 결실을 잘 살려서 앞으로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싶다. 그래서 마을 전체를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을 받았다. 지정을 받았기 때문에 비실마을에서 체험하면 체험점수가 나온다. 이를 기반으로 하반기 부터는 체험 실습을 시작할 계획이다. 어린이들에게 연도 채취하고 연 밭에서 카누도 타보고 미꾸라지도 잡아보는 등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

연으로 다양한 식품 개발 보급할 것

-연으로 다양한 식품도 준비하고 있던데
▲그렇다. 진주의 영남요리학원과 함께 다양한 연 요리를 개발하고 있다. 사람들이 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도 실제 연으로 요리할 줄은 잘 모른다. 연뿌리 조림이나 연밥 정도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요리이다. 그러나 연으로 요리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요리학원과 함께 다양한 연 요리를 개발하여 보급할 계획이다.
-연 가공공장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그렇다. 우리가 중간상인에 연뿌리를 넘겨도 벼농사 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소득이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연을 가공해서 팔면 지금 수익의 약 5배 정도 더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연 가공공장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진주시 조례와 배치되는 면이 있어서 지금 고민 중이다.
-진주시 조례가 무엇이 문제인가.
▲진주시 조례는 가공공장이 120평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규모는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너무 크다. 120평의 공장도 필요 없고 이 공장을 지으려면 땅이 800평이나 필요한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어느 정도의 규모면 되는가.
▲약 20평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조례에서 120평 이하는 안 되게 해 놔서 고민을 하고 있다.

태어나서 비실마을 떠난 적 없어

-정위원장은 비실마을 사람인가.
▲그렇다. 1946년 비실마을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외지에 나가 본적이 없다.
-그럼 지금까지 비실마을에서만 살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외지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나.
▲그런 생각은 없었다. 그냥 비실마을에 사는 것이 천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까지 비실마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이번에 마을전체에 연을 심은 것과 1980년에 마을 위에 저수지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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