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신뢰’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아침을 열며-‘신뢰’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07 16:0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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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채영숙/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신뢰’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청약 통장에 매달 급여의 일부를 저축한 지 10년만에 처음으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아파트를 분양부터 이사하기까지 난 많은 일을 겪었다.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경험해 보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으면서 전문 지식의 필요성과 상식이 달라 생긴 다툼들로 많은 시간과 맘 상함이 있었기에 오늘은 이사까지 진행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본다.

청약 통장을 만들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나도 아파트 청약 당첨. 분양 사무소에 계약서를 작성하러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다. TV에서 보았던 풍경. 모델 하우스 앞에는 분양권을 팔아주겠다는 중개업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계약서를 담당하는 직원은 자세한 설명도 없이 날인을 해야 되는 부분을 알려주며 빨리 끝내기에 급급했다. 베란다 확장, 붙박이장, 시스템 에어컨, 빌트인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인덕션 등등. 기본으로 아파트를 꾸미면 어떤 모습이기에 이런 많은 종류들을 별도 구매를 해야 하는 것일까 궁금할 정도였다. 조합원과 일반인 청약자는 분양가도 다르고, 조합원은 임시 이사에 필요한 비용 일체, 별도의 전자제품들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혜택도 줬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공사 기간 동안 통장에서는 계약 금액이 꼬박꼬박 쑥쑥 빠져 나갔고, 준공 승인이 나고 입주 전 하자보수 신청을 위해 처음 아파트를 방문했다. 하자보수 점검만 하는 전문가가 있다고 소개했지만 내가 직접 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 점검에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을 프린트해서 드디어 임시 비밀번호를 받고 내 집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아직 미비한 부분들과 잘못된 부분들을 꼼꼼히 기록을 하고 하자보수신청을 받는 AS센터는 번호표를 받기 대기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네다섯 번의 방문 동안 집주인들과 센터 직원과는 언쟁을 높여 싸우는 일이 늘어나고 건설업체를 대신한 직원이나 하자보수 작업자는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마음보다 대충 눈가림을 하는 수준이거나 이게 최선이라는 말만 늘어놓았다.

발품을 팔면 셀프 등기를 할 수 있다는 다른 세입자의 말에 나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세무서에 방문해서 등기 처리도 했다. 등기전문업체 직원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묻고 일 진행을 하니 세무서 공무원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처리를 해 준다.

드디어 입주 시작. 입주 가능일부터 3개월을 기다려 보았지만 새집증후군이 걱정되어 도저히 바로 이사를 할 수가 없어 2년간 전세를 주기로 결정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를 통해 조건이 맞는 세입자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계약서를 작성하고 조건들을 확인하고 2년을 빌려주었다. 세입자는 반려동물을 몰래 키웠고 하자보수는 엉터리로 받아놓았다.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계약서 작성 잘못이라 했더니 자기 책임이 아니라 한다. 하자보수 신청 중 2년 내에 해야 하는 것들은 기간이 지나서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것들도 생겨버렸다. 방역과 처음 상태를 요구하고 책임 소재를 물었지만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 하자보수 작업자 잘못이거나 생활 하자라고만 한다. 자기 집이라면 이렇게 무책임하게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새 집이 5년은 살았을 정도로 헌 집을 만들어 놓았고, 막상 이사를 진행하려고 하니 냄새부터 여기저기 손을 봐야 들어올 수 있을 정도였다. 먼저 바닥과 도배 공사를 집 근처 인테리어 업체에게 맡겼다. 도배지를 고르고 계약서 없이 구두로 진행을 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깨끗하게 해 드리겠다고 해 놓고 벽지는 얘기한 것과 다른 벽지를 발랐고 막상 결과는 전문가의 작업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주름이 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재작업을 요구하니 벽 미장이 잘못되어 발생한 문제란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또 책임을 떠넘긴다.

청약부터 이사까지 진행하면서 난 오늘도 배운다. 돈이 오고 가는 일들은 특히 남을 믿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믿고 맡기는 일인데 떠넘기기식의 책임 의식과 신뢰를 저버리는 일들 속에서 나는 또 배운다. 갑과 을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일에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조목조목 발생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하고 서로 문구를 확인한 후 계약을 해야 한다. ‘신뢰’가 기본이 되는 제대로 된 사회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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