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멍에와 부리망
아침을 열며-멍에와 부리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08 16:0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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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멍에와 부리망

진보의 극단에 선 예수는 말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 또 성경은 말한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신명기 25:4), (고전 9:9), (디모데전서 5:18)”

이 말씀은 수고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하늘의 말씀이리라. 하지만 가만히 나의 주변을 살펴보면 이 말씀은 하늘에 가까이 있는 높은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일 뿐, 나처럼 허리를 구부려 땅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먹는 땅에 붙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공중에 뜬 추상적인 바람 같은 소리에 불과하다.

‘멍에’는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말이나 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를 말한다. 일하는 것이고, 구속이다. 또 ‘부리망’은 소 입마개를 말한다. ‘머거리·허거리’라고도 한다. 소나 말이 일을 하면서 풀을 뜯어 먹거나, 사람이 먹어야 할 곡식을 먹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 도구다.

이처럼 사람들은 탐욕스럽게도 자기 이익과 편의를 위하여 말 못하는 짐승에게 잔인한 멍에를 씌어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고, 입에 부리망을 채워 먹을 것도 먹지 못하게 만들어 혹독하게 일을 시킨다. 이게 잘난 인간이다. 물론 일을 끝낸 다음엔 충분한 먹거리를 주고 쉬게 하여 늘어지듯 편안한 휴식을 주기도 한다. 짐짓 꾀를 부린다.

하지만 소나 말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필요 없어질 때는 미련 없이 잡아먹는다. 토사구팽(兎死狗烹). 토기를 잡은 사냥개는 더이상 쓸모가 없으니 삶아 먹는 심보와도 같다.

사람이란 그렇다. 자기에게 필요 할 경우에는 호들갑 떨며 좋아하면서 혹독하게 부려먹다가, 용도(用途)가 다됐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매정하게 돌아서고 잔인하게 내버리거나 죽여 버린다. 이게 인간이다. 평범한 사람이건, 영웅호걸(英雄豪傑)이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를 지혜로운 용인술(用人術) 또는 현명한 처세술(處世術)이라 자화자찬하며, 자기 긍지에 가득 차서 자기만족의 흡족한 배를 두드린다. 지독히 이기적인 패러독스(paradox)고, 잔인한 자기기만(自己欺瞞)이다. 이처럼 인간이란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 자기에겐 무한애정(無限愛情)이고 다른 사람에겐 끝까지 매정스럽다. 자기에겐 무한 관용(寬容)이고 타인에겐 무한 책임추궁이다. 자기편에겐 무한한 용서를, 자기편에 아닌 사람들에겐 가혹한 질타를 시도 때도 없이 밤낮으로 퍼붓는다.

내로남불. 이중잣대. 문자폭탄, 우리가 늘상 보는 우리 시대 일상의 사자성어다. 우리가 어쩌다 이리되었는가? 어쩌다 이런 풍토 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홍익인간(弘益人間),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꿈꾸며, 콩 한 쪼가리도 나눠 먹던 그 옛날 하늘 빛처럼 강인했던 아름다운 전통과 미풍양속은 어디서부터 이지러져 버렸던가? 제갈량이 죽은 이후 나타난 동이족 공략 병법 이후부터인가, 사색당파 때문인가, 왜정시대 밀고(密告) 강요 여파인가, 산업화의 시장경제 남 호주머니 훑어 먹기 풍조 탓인가? 아니면 지금도 교묘하게 생각과 마음을 비트는 여론조작의 탓인가, 사회지도층 인사의 언행불일치 때문인가?

어떻든 알 수 없으나 이중잣대, 내로남불, 후안무치(厚顔無恥)의 현상은 우리같이 힘없고 백없어 윗자리 눈치만보며 작은 숨 골라 쉬는 소시민들 사이에서 보다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름 난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물론 이름 없는 서민보다 이름난 사람의 언행은 항상 드러나 있기에 그렇게 자주 보이는 착시현상도 있을 것이리라.

그러나 하늘에 속한 높은 분들은 항상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이 한 몸 다 바치겠노라고…” 막중하고 무거운 중책의 멍에를 걸머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노라고…또한 사회적 정의와 올바른 공의를 입으로만 외치며 목숨을 걸고 투쟁하며 살이 터지고 뼈를 깎는 인고의 고통도 마다않고 평생동안 숭고한 삶의 궤적을 살아오신 시민단체 지도자들께서도 는 이렇게 말씀들 하신다.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었노라”고…

하지만 바람결에 들리는 수치(數値)는 수치(羞恥)스럽게도 언제나 입에 채운 부리망을 걷고 그들의 배만 채웠다는 전설뿐, 서민들의 재산은 쪼그라드는 반면 고위층 인사의 재산 내역은 늘어났다는 언론보도다. 아마도 언론의 거짓이리라. 또한 정의를 외치는 분들의 공개된 재산내역과 처신에 관한 해명도 매우 정당할 것이리라. 그들은 여전히 그 정의롭고 잘난 얼굴을 밑천 삼아 또 다른 거룩한 사업을 도모하여야 하고, 또 다른 본질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우리들로서는 감히 두려워 겁나기만 한 막강한 권력을 거머잡고 휘둘러 나가셔야만 할 것임이리라. 그 위대한 분들의 여정(旅程)을 빛나게 완수시키기 위하여 삶의 무게에 지친 서민들은 저마다의 멍에를 걸머쥐고, 주려 여윈 배에 허리띠를 동여매고, 평생동안 우마(牛馬)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녀야 할 것임이리라. 입에는 또 다른 부리망을 채운 채 먹지도 울부짖지도 못하며 하소연은 가슴에 묻고 그저 맨 벙어리인냥 님들의 영광스런 행보에 우레 같은 박수를 쳐대야만 할 것임이리라.

하늘에 속한 이름 날리는 그 분들의 멍에는 가볍고 먹이는 풍요로운 반면, 땅바닥을 기는 우리의 멍에는 늘 무겁고 우리에게 채워진 부리망은 너무 튼튼하다. 아! 정녕, 하늘은 결단코 하늘의 편이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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