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왜 등기권리증인가
도민칼럼-왜 등기권리증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09 15: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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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왜 등기권리증인가

지리산 자락 하동 장터에서 채소가게를 하는 동네언니는 장사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시낭송 모임에 들어 시를 읊는다. 시 이야기를 나누다 나처럼 서울에서 내려와 사는 모습이 궁금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마 서울에서 살았으면 지금쯤 돈 버느라 많이 아팠을지 모르겠다며 지리산, 섬진강을 보며 사는 우리가 참 행복한 거라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도시와 농촌 일장일단이 있지만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며 사는 삶이 고마워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주 놀러오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세 개 도에 걸쳐있다. 최고봉인 천왕봉은 경상남도에, 신령한 기운이 있다는 노고단은 전라남도에, 구중궁궐 정령치와 뱀사골은 전라북도에, 어느 곳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어머니의 산답게 고루고루 자락을 내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픈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치유 받는 곳이기도 하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지리산에 오면 낫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와서도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는 호되게 당하는 모습도 봤고 또 보고 있다. 정말 자연이 주는 만큼 받아들여야만 지리산이 품어준다.

8년 전 페이퍼북 출판사의 제안으로 <하동 느리게 걷기>라는 책을 만들기로 계약을 맺어 하동 곳곳을 다녀볼 기회가 있었다. 하동은 짐작보다 꽤 큰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지리산 자락과 아울러 섬진강도 있지만 동남쪽으로는 바다도 끼고 있다. 그래도 하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화개장터가 있는 화개 의신골짜기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면 평사리 들판이 외부에는 많이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부부송이 있는 악양 너른 들판 한쪽에 비닐하우스가 들어선 적이 있다. 본인 소유 땅에 무엇을 짓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악양을 사랑하는 지역 주민과 전국의 많은 이들이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악양에 비닐하우스가 웬 말이냐고 원성을 사 하동군이 중재하여 철거한 사례가 있다. 모든 땅에 소유권자가 있기는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무안한 삶이 이어지지 않고 한세상 살다가는 세상에, 그 땅은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내내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기에 매우 신중하게 개발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녹차하면 젊은 친구들이 전남 보성을 떠올렸지만 요즘은 하동야생차를 많이 말한다. 역사적인 기록을 보아도 차(茶)를 보존하고 오래 즐겼던 곳이 화개를 중심으로 한 섬진강변 자락이었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바로 알 수 있다. 경남도 기념물 61호로 차시배지가 지정되고 하동군민에게는 직간접적으로 차와 연관된 산업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 관광을 주사업으로 해서 먹고 사는 하동군민에게는 화개 야생차밭은 단순한 차밭 이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 유서 깊은 골짜기에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도 아닌 단체 그것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도 아닌 종교단체이자 사찰에서 차 밭을 갈아엎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한번 조성하기도 어려운 차밭을 없애는 것일까? 엊그제 우리는 ‘2022년 차엑스포를 하동에서!’라는 기원을 담아 축원의 잔까지 들었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전후의 사정을 모르지만 전후 사정을 설명해준다 하여도 하동군 녹차의 상징인 야생차 밭이 소실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모든 이들의 편리한 통행을 위하여 도로를 내느라 없앤다고 해도 반대할 마당에 사찰의 자급을 위한 콩밭을 만들기 위하여 갈아엎는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지난해에는 화개면 정금리 일원에 양수발전소를 만든다고 해서 발칵 뒤집혔었다. 그때 사람들이 반대한 큰 이유는 하동 야생차 밭의 훼손도 큰 몫이었다. 하동 야생차는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우리나라 불교음악인 범패(梵唄)와 차(茶) 의 전통을 상징하는 쌍계사가 콩밭을 만들기 위하여 야생차 밭을 갈아엎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무언가 단단한 오해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땅은 영원한 소유가 아닌 권리증으로 위임되어있는 것이므로 권리에는 의무도 있음을 기억해 주십사, 야생차 밭 보존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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