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유월이 되면
진주성-유월이 되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09 15: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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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유월이 되면

오늘이 6·10 민주항쟁 서른세 돌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되살아난다. 이제는 잊어도 좋을 내음이건만 내게는 왜 잊혀지지 않는 걸까. 아침마다 집을 나서며 저녁 무렵이면 다시 이 길을 밟으며 돌아올 수 있을까 하고 돌아보기를 몇 번이나 했다. 어린것들이 선잠을 깨고 눈을 비비며 흔들어주는 손을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매일 아침 칠성판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야 했던 그 유월이다.

총무·조직·선전이라는 당 3역 중의 선전을 맡고 있었으니 마이크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때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확성기를 때맞추어 옥상에 내걸어야 하고 차 지붕 위에도 다시 얹어서 잠든 영혼들을 깨우려고 목이 쉬었다. 진주성 영령들께 통절함을 고유하고 칠암벌 대숲을 뒤흔들어 뒤벼리에 부딪친 메아리로 비봉산을 흔들어 깨워야 했다. 산천은 보았는가, 우리의 몸부림을! 강물아 답을 하라. 우리의 절규를! 유월을 못 잊어 ‘유월이 되면’ 하고 20년째 되던 유월 그 어느 날에 한 편의 시를 이렇게 썼다.

‘유월이 되면 매캐한 최루탄 내음이 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가족들이 볼까 봐 얼른 고개를 돌린다. 늘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다. 유월이 되면 더 미안하다. 그래도 말로는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유월이 되면 목마른 함성이 처절하게 들린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진다. 가족들이 눈치챌까 봐 밖으로 나간다. 섧고 또 서럽다. 유월이 되면 더 서럽다. 그래도 내색 한 번 못하고 20년을 살았다. 유월이 되면 되살아나는 얼굴이 많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린다.

가족들이 모르는 사람들이다. 늘 보고 싶고 또 보고 싶다. 유월이 되면 더 보고 싶다. 그래도 연락 한 번 못하고 20년을 그리워했다. 유월 그 한참 전부터 내내 끝 날로 살았다. 아침마다 칠성판을 짊어지고 집을 나선다. 돌아오지 못할 길인가 싶어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마이크를 쥐면 산천도 울었다 목이 쉬었다. 유월이 되면 이제는 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래도 잊지 못하고 20년을 살았다’이다. 오늘은 또 33년이라고 고쳐 읽는다.

해마다 유월이 되면 남강변을 거닐어 본다. 거룩한 분노를 달래며 강물은 말없이 흘러가건만 유월이 되면 묻어둔 사연들이 가슴을 헤집는다. 누구를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저항이었던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흔들리지 말자던 동지는 간곳없고 산자여 따르라는 절규만은 남았는데 따르지 못한 미안함을 안고 유월이 되면 산자는 이렇게 향을 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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