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춤은 삶…춤 통해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요
나에게 춤은 삶…춤 통해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요
  • 한송학 기자
  • 승인 2012.08.06 18: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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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생활체육 사천시 전통무용연합회 구영미 회장

▲ '춤의 전도사'로 불리는 국민생활체육 사천시 전통무용연합회 구영미 회장. 그녀는 '종합예술인'으로 국가중요문화재 가산오광대 이수자이기도 한 젊은 예술인이다.
춤의 대중화를 위해 쉬운 춤을 연구개발하고 가르치면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춤의 전도사'로 불리는 국민생활체육 사천시 전통무용연합회 구영미 회장.  그녀는 사천에서 '종합예술인'으로 통하며 이제 나이 38세의 국가중요문화재 가산오광대 이수자이기도 한 젊은 예술인이다. 그녀가 무용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어릴 때 동네 한 무용학원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사천에서 중학교까지 무용을 계속 하다가 국립서울전통예술고등학교를 진학해 부산여대 무용학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에도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져 레크레이션, 요가, 벨리댄스 등의 국가 자격증과  특수치료, 재활복지 등 30여개의 수료증을 지니고 있으면서 나아가 실기 뿐 아니라 이론에도 정통하고 싶은 욕심에 경상대 대학원에서 체육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요즘은 노인과 주부 등 생활 속에서 춤을 즐기는 사람들을 더 늘려 나가자는 취지로 주민자치센터나 사회복지시설 등을 돌아다니며 춤을 가르치고 있으며 무용예술치료활동도 하고 있다.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춤을 전문적으로 막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중간에 춤을 그만 둘 수도 있는 상황에 춤을 추기 위해 스스로 학비를 벌어 억척같이 무용공부를 마쳤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자신이 힘들때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춤에 인생을 맡기고 죽기 전까지 춤을 추고 자신의 재능으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구영미 씨를 만났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웃음으로 인해 상대방은 물론 모두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은 구영미 회장과의 인터뷰 요지

-어릴 때부터 ‘끼’를 보였다는데
초등학교 때 TV에서 가요프로그램을 보고 동네아이들에게 내가 본 노래와 춤을 가르쳐 주면서 놀았다. 또한 마을회관에서 생일 등의 행사에 동네어르신들께 춤을 자주 선보였다. TV에서 본 것들이 대중 앞에서 노래와 춤이 자연스레 펼쳐졌던 것 같다. 동네에서 춤쟁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무용이 재미있었나
어머니께서 무용학원에 등록해 주셨는데 학원 원장님께서 5분 동안의 춤을 보여주셨다. 한번보고 다 외워서 춤을 선 보였는데 선생님이 놀라면서 소질이 있다고 무용을 꼭 해보라고 했다. 이때부터 학교와 무용학원만 다녔다. 심지어는 학원에서 밥먹고 자고 공부하며 모든 생활을 무용학원에서 보냈다. 이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학창시절에도 춤으로 유명했다는데
초·중학교 때 단상에 올라가 전교생 앞에서 체조와 무용 등을 선보이고 운동회 때는 항상 응원단장을 맡고 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너는 틀림없이 무용 쪽으로 나가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 친구들을 만나면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말하곤 한다.

-지역에 많이 알려졌나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들 하는데 무용의 불모지인 사천에서 무용으로 알려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가르친다. 단순히 춤을 가르치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다가 1997년 사천여고의 한 행사에서 매스게임 연출을 맡았는데 이 때부터 지역에서 저의 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크고 작은 많은 공연을 기획했다. 한 공연에서는 제가 가르친 젊은 새댁부터 할머니까지 순수 아마추어들로 이뤄진 250여명의 무용수가 참여해 만여명의 관람객이 모인 공연도 있었다.

-어떤 활동들을 하나
1회~13회 와룡문화재 무용공연 및 안무.지도, 1회~13회 전통무형문화재 국악발표 공연, 박재삼문학제 공연, 가산오광대 정기공연 등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 하고 있다. 해외로도 공연을 다닌다. 또 지적장애 장애치료 수업, 자폐증 특수운동치료, 댄스프포츠강사, 노인운동강사, 요가수업 등 농촌이나 저의 춤이 필요한 곳을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16곳으로 강의를 다니면서 700여명을 가르치고 있다. 

-특별한 공연은 무엇인가
2002년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져 전국적으로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효순이 미선이' 두 영혼을 달래는 진혼무를 췄다. 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제에서 살풀이춤을 추기도 했다.

-무용을 못 할수도 있었다는데
어릴 때 부유하게 살았는데 중학교 때 아버지가 갑작스런 사고로 10년 동안 병상에 계시면서 집안형편이 힘들어서 더 이상 무용을 하기 힘들어졌다. 어머니 혼자서 4남매를 키우셨는데 힘들게 무용 공부를 했다. 대학도 어렵게 다녔다. 어머니를 졸라 첫 대학 등록금만 주시면 벌어서 졸업을 하겠다고 장담을 했고 그래서 학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아서 학교를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공부에 더 뜻이 있어 낮에는 학원을 운영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했다. 당시 IMF가 와서 학원이 잘 되지 않았는데 다른 학원에 가서 강의도 하고 학원 운전도 하고 청소를 해서 돈을 벌어 공부를 마쳤다.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어렵고 힘들어도 항상 밝게 웃는다. 사람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라는 말같이 나는 웃고 나를 보는 사람은 또 웃고 다 같이 웃으면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공연·강의를 가도 저를 보고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 한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을 보면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이 넘쳐 기운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항상 웃고 다닌다. 남모를 아픔도 있지만 즐겁게 웃어서 상대방도 웃으면 그 웃음으로 나도 행복해지고 그 기운을 받는 것이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춤은
한국전통무용이 전공이고 28년째 하고 있으니 가장 잘 하는 것이다. 보통 프로 무용수들은 예쁜춤만 출려고 하는데 저는 다르다. 농사짓는 어머님, 할아버지, 할머니, 몸이 불편한 사람들, 우울증에 시달리시는 분 등 사람들에게 생활에 활력을 주기 위해 춤을 가르쳐서 자신감을 주어 무대에 세운다. 배움만으로도 희열을 느끼는 이런 분들을 무대에 세우면 그들 역시도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고 그분 가족들 또한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

▲ 구영미 회장이 가르친 젊은 새댁부터 할머니까지 순수 아마추어 250여명의 무용수가 국민생활체육 사천시 전통무용 연합회 무용 공연을 만여명의 관람객이 모인 가운데 성황을 이뤘다.

-국가중요문화재 이수자라는데
국가중요문화재 가산오광대 이수자가 저를 포함해 8명이 있다. 전수자에서 9년 만에 이수자가 됐는데 1년 정도 됐다. 인간문화재에도 도전할 것이다. 전통문화로 전통을 이어나가고 보전하면서 다음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심정으로 목표를 가지고 천천히 이뤄 나갈 것이다.

-가산오광대란 무엇인가
사천 축동면 가산리에 전승되어 오는 가면극이다. 조창 오광대라고도 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 7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 9시경부터 자정까지 연희되는데 가산 오광대는 그 해의 안녕과 행운을 비는 일종의 동제의식이다. 그 유래는 어느 봄날 남강의 지류로부터 궤짝 하나가 표류해 와서 열어보니 그 속에 탈과 오광대극본이 들어 있어 당시 그 곳 목섬에 귀향 온 서울사람에게 보였더니 극본을 읽어 주고 놀이를 가르쳐주어 그때부터 가산 오광대는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는데
뭔가 색다른 것을 하고 싶어서 춤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시설, 노인단체, 정신병원 등을 다니며 춤을 가르치지만 봉사활동으로 이뤄지는게 대부분이다. 특히 노인대학 같은 경우는 15년간 봉사활동으로 어르신들을 가르치고 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춤이기 때문에 외롭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의 재능인 춤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수업을 무용만 가르치려는데 저는 뭔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개개인의 사정과 아픔들을 알고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맞는 춤을 가르치고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 한 공립정신병원에서 무용, 에어로빅을 환자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제의가 왔다. 의사, 간호사들이 다루지 못하는 부분들을 선생님의 와서 이분들을 즐겁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보통 이런 병원은 10년 이상 지내는 분들이 많다.  많은 어려움을 겪다 보니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뭔가를 돌려준다는 마음으로 봉사했다. 환자들을 다루면서 나도 힘든 기억들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모든 수업이 봉사활동인가
지금 수업 중에 절반정도가 봉사활동이다. 봉사를 하는데는 과감하게 봉사활동을 한다. 반면 능력을 인정받고 돈을 받아야 하는 곳은 꼭 받는다. 스스로 프로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대가를 받아야 또 다른 곳에 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치료강사로도 활동하는데
4년째 하고 있는데 다운증후군, 자폐증, 문제아, 지적장애 아동 등 글도 읽어주고 글쓰기도 하면서 무용과 함께 병행해서 가르친다. 치료 외에 물품지원도 하고 옷을 나눠주고 체험활동으로 영화도 보여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함께 먹으로 다니기도 한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인운동강사 등 요가로 재활치료도 한다. 균형감각이나 즐겁게웃는운동, 건강증진, 식습관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데 무작정 운동만 가르치면 어르신들은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같이 한다. 

-자신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사람들은 큰 성과를 이루었을 때 성공이라고 하는데 작은 사소한 것도 성공이다. 내 아이를 이만큼 키운 엄마로써 성공했고 춤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계속 할 수 있는 것도 성공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또한 성공이다. 항상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산다. 남들은 감사한 것을 말하라면 몇 가지 예를 드는데 저는 다르다. 일상의 모든 것들에 다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성공을 하고 안하고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꿈이 있고 계속 성공 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춤을 췄고 죽기 전까지 춤을 출 것이지만 춤을 통해 서로 의존해서 행복해지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어려운 환경 속에 많은 도움을 준 그들에게 이제는 춤으로 보답하고 춤으로 봉사를 하면서 살고 싶다. 저의 춤이 필요하면 어디든 갈 것이다. 어려운 시절 많은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도움을 주고 살아야 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배우는데 더 많다 나는 춤을 가르치고 그들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이런 경험들은 생활에 많은 힘이 되고 있다.
또 지역에는 실력을 쌓기 힘들기 때문에 지역을 떠나는 실력자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지자체에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타 지자체의 경우 시립무용단 등의 무용단들이 있는데 사천시에는 아직 없어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없다.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생활체육으로 춤을 대중화 시켜 예술가들과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여건만 조성된다면 이 좋은 춤을 무용을 내가 가진 기술로써 봉사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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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철 2012-08-09 08:57:08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기쁨을 주시는 구선생님을 신문에서 보니 더 반갑습니다. 무더운 날에 건강도 잘 챙기세요. 오래 오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는 일에 그 분의 도우심과 축복이 있으시기를...기사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