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찰나에 피고 찰나에 지는
시와 함께하는 세상-찰나에 피고 찰나에 지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17 16:1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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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찰나에 피고 찰나에 지는

누구의 피울음인가
꽃 비경 덧널처럼 쌓이는 대숲,
땅속 금강이 일제히 솟구치니 내 귀,
천년 서루에 올랐다 내린다.
소름 돋는 저잣거리 원성을 말아 쥔 북악산 솔이끼며 귀신새 소리마저
이곳에선 하얗게 날이 선다.

만파식적 듣고 자란 서라벌 백률 송순,
황룡이 승천하듯 굽이굽이 내달린 곳,
자추사 흰 피도 찰나에 피고 찰나에 지는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이령, ‘삼국유사 사랑 서사시 백률사에서’)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시인이 수십일 전 ‘삼국유사의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한 서사시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시는 바로 그 기행시의 일부이다. 이 시는 원래 산문형식의 연시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하기 위해 운문시로 재정리하였으며 전문을 모두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여 한 부분만 소개한 것이니, 혹 원작자께서 보시게 되더라도 용서해 주시길 빈다.

백률사는 경북 경주시에 있는 사찰로, 신라 법흥왕 때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할 때, 흰 피가 뿌려졌고, 그의 목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멀리 떨어진 곳에 떨어졌는데, 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장소에 세운 사찰이다. 처음에는 ‘자추사(刺楸寺)’라고 했다가 후에 ‘백률사(栢栗寺)’로 이름 했다는 천년고찰이다.

이 시는 백률사 주변의 장엄함을 노래하면서 이차돈의 순교 장면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차돈은 불교 전파를 위해 스스로 순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의 죽음과 함께 등장한 기적으로 신라인들은 불교를 국교로 선택하게 된다. 백률사 부근에는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예전 이차돈이 숨져갈 때처럼 대나무가 서슬이 퍼런 것에 대해서 시인은 이차돈의 순교 여진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형식이 마치 당시 이차돈이 죽을 때 덧널, 즉 장례식에서 외관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차돈의 죽음은 역시 종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는 상황으로 그 종교의 힘으로 신라 불교문화가 융성하게 되어 천년 넘게 맥락을 이어져 왔으니, 그 법이 바로 금강경의 내용과 같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이러한 사자후(獅子吼)의 장엄함에 솔이끼며 귀신새(호랑지빠귀)들 조차도 밤새도록 울어댄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시인의 생각이 과장이라기보다는 실제 새 울음소리가 이차돈의 순교 장면에서 비롯된 사연들을 잊지 않고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는 의미로 문학적 재해석으로 보면 될 것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시적 내용이 다소 비약되고 있는 듯하다. 이차돈의 순교와 신문왕의 만파식적은 백 년 이상의 시간적인 차이가 나지만 이 둘을 결부시키려는 시인의 의도는 신라 불교문화의 왕성한 출발점은 이차돈의 순교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메타포(metaphor)로 보면 될 것이요, 신라의 태평성세를 이룬 신물(神物)인 만파식적을 등장시킨 것은 신라문화의 중흥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른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것이 불교의 교리이듯 ‘자추사’에서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일어났던 신라문화의 중흥도 천년이 지난 지금은 역사의 무대에서 희미해졌다는 사실로 마무리 하면서 쓸쓸해진 현재 백률사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역사적으로 이러한 식의 시가 많은데 길지 선생의 회고시가 대표적이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송악의 오백 년 고려왕조가 사라진 것을 보고 탄식조로 읊은 시조인데 오백 년이나 천년의 역사는 결코 짧은 긴 세월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긴 우주관 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고 보니, 이번 시의 전모는 사상적으로 제행무상이라는 불교관 적인 맥락과 함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시인의 사랑시를 통해 경주에 있는 불국사나 석굴암이라는 피상적인 이미지 외에 백률사라는 고찰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보고 허락한다면 한번 순례를 해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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