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순종하는 자연처럼 푸른 나무의 일기를 쓰자
칼럼-순종하는 자연처럼 푸른 나무의 일기를 쓰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21 15:2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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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엽/도서출판 곰단지 대표
이화엽/도서출판 곰단지 대표-순종하는 자연처럼 푸른 나무의 일기를 쓰자

여름이다. 더워서 여름이고 바람이 짙푸르러 여름이다. 태양이 오랫동안 지지 않고 군데군데 주저앉아 여름을 증명한다. 감자가 영글고 옥수수가 익는다. 거리의 사람들 살갗을 태우며 뚜렷하고도 선명한 곡선으로 확실한 세상을 명징한다. 계절의 실한 맛을 돋우려 여기저기서 신록은 울창하고 열매를 만들기 위한 여름만의 푸른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비결이 아닐 수 없다. 보라, 자연의 정신이라고 말해도 좋을 건강한 비와 바람이 내리는 계절의 혜안을, 줄기와 뼛속까지 찾아들어 갈증을 녹여주는 녹색 성장의 숭고한 미래를.

양성하다의 뜻 말을 곰곰이 새겨본다. 많게 적게 차별하지 않으며 골고루 퍼트린다의 어원이 아닐까? 푸르른 하늘과 광합성을 모든 만물에게 촘촘히 나누어 공급하는 것이다. 여름이다. 비단 이를 누리는 것이 어디 바다라는 광야와 푸르게 넘실대는 초록 물결 자연 만이랴. 계절은 그때그때 움직임으로 인간의 정신과 체위에 닿길 원한다. 일상의 순조로운 질서 변화를 일으키기면서 지혜로운 삶을 건강하게 부추긴다. 추운 겨울도 봄꽃이 피어야 할 봄날의 하루도 우리에겐 알뜰한 하루의 거름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면 여름에 맞는 곡식을 불리고 절여서 가족의 건강을 챙겨내던 어머니의 지혜를 떠올린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머니는 오이지를 담갔고 아버지는 아침 밭에 가서 이슬 젖은 해콩을 따다 마당에 부려놓곤 했다. 이를 일일이 벗기던 남매들은 어머니의 손맛대로 콩이 박힌 보리밥을 먹고 간식으로 숭숭 콩이 부푼 밀가루 떡을 잦게 먹을 수 있었다. 제철마다 가족의 밭은 덩치 큰 냉장고가 아닐 수 없었다. 갖가지 푸른 채소는 물로 뿌리채소들이 무럭무럭 싱싱하게 자랐고 아침 반찬과 저녁 반찬을 따로 준비해 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무더위가 찾아와 어른이나 아이들 겨드랑이 등짝마다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아이들은 여전히 집에 있지 않고 들로 냇가로 가서 풀처럼 소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살고지고 했다.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풀씨를 훑으며 후후 불어 날리기도 하고 다시 그것이 입술에 팔뚝에 엉겨 붙어 따갑기도 했지만 무엇이 그리 좋은지 우린 깔깔대며 웃어젖히곤 하였다. 돌멩이를 줍고 큰 나뭇잎을 땋아 엉성하기는 하였으나 그늘 구석진 곳에 엉성하기는 하였지만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우리만의 푸른 본부를 만들기도 하였다. 소나기 오면 오소소 앉아 여름비를 보기도 하고 집에 갈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물 찬 제비처럼 여름 생활이 씩씩하였다. 어쩌면 이들이 자연의 한 부분을 채우던 푸른 식물이 아니었을까?

일요일 오후 네 시 무렵의 아파트 놀이터를 내려다본다. 어린나무들이 받침대를 하고 심심하게 서성이고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느리게 걷는 남자와 무릎을 반쯤 굽혔다 일어 섰다를 천천히 반복하는 나이 많은 어른을 본다. 아이들은 둘 셋 나와서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맨손으로 서로를 떠밀면서 소릴 지르고 놀기도 한다.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여름 오후 풍경이다. 이들이 어떤 날의 삽화처럼 풍경아래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문득 생긴다. 여기 아파트는 나름의 여러 동이 주변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여 수 백호에 사람들이 살고 지내고 있다. 고작 주변 시야로 보이는 문밖의 사람들은 세어도 어림잡아 다섯 여섯 명이 전부다. 나머지 어른들과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 또는 어딘가의 안에 있다는 현실이다. 간혹 그들의 본부가 놀이터 아닌 나뭇잎 집이 아닌 피시방이거나 노래방이어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곳도 눈이 부시게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이 섬처럼 흐른다면, 사용하는 언어와 노래가 서로의 어깨를 어우르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다.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섭섭할 따름이다.

늙지 않는 자연과 식물은 자연의 풍성한 녹색 산소를 아낌없이 섭렵하고 누리는 까닭이리라 여겨진다. 우리의 생각이 지루하고 때로는 불평처럼 쌓이는 것은 어두운 집안에서 내일을 설계하느라 불확실한 인간의 미래에 마음을 부대끼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 나는 저들의 삽화로 푸른 나무의 일기를 써야겠다. 소나기의 소설보다 아름답게 때로는 성실하면서 포용이 넘치는 멋진 신록의 여름세계를 그려 보리라. 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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