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명심보감의 원저자 추적(秋適)(1)
진주성-명심보감의 원저자 추적(秋適)(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24 14:4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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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명심보감의 원저자 추적(秋適)(1)

명심보감(明心寶鑑)은 동양서적으로서는 맨 처음으로 서양어로 번역되었는데 논어보다 10년 전 일이다.

<명심보감>저자에 대하여 장문계, 여낙천, 범입본, 왕명, 서산대사, 심의주 등 6명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들 6명은 노당 추적(1246~1317년)보다 80~200년 정도 후대인물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어 인정받지 못했다.

추적 선생은 고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좌사간, 용천부사, 시랑, 민부상서 예문관대제학, 좌복야(정 2품)등을 역임하고 안향 선생의 추천을 받아 국학(성균관)교수로 재임할 때 왕자들과 3품 이상 아들 손자들을 가르치면서 필요에 의해 각종 문헌을 찾아 명심보감을 편찬하셨다.

명심보감보다 60여 년 전에 천태종과 유불선에 관하여 발간된 인천보감(人天寶鑑, 현 합천해인사 판각본, 국보)을 보고 보감의 뜻이 좋아 옮겨 쓰고 형식만 본받아 명심보감을 짓게 되었다.

중국의 대학자인 왕중민 교수와 대만의 정지명 교수가 명심보감에 대하여 쓴 논문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논어, 맹자, 주역에 비교해 수준이 낮다고 보고 교양이 있는 선비가 읽을 책이 아니라고 여기고 비정통 통속서로 취급해 널리 보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나라 학자 왕형(1564~1611년)은 감찰어사와 찬성사 등을 역임했는데 <명심보감> 서문을 짓고 교정본을 지었기 때문에 명심보감 저자로 오해하는 이들도 생겼다.

북경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보관된 유일본 명심보감을 열고 판식을 보면 저자 불명이라 했고 중국인 범입본이나 왕형이 저자라는 문구는 없다.

일본에도 임진왜란에 참여한 문중이나 대학 도서관에 <명심보감>이 90여 종이 나타나 있으나 대부분 저자 불명이며 오직 범입본이 지었다는 명심보감은 모 대학 도서관에 한 권 뿐이다.

베트남에도 <명심보감>이 가감을 더하여 19편이 20편을 증편되고 내용은 축소되었고 대학 도서관. 유림회. 공자추모회 등에 수백 권 이나 보존중이지만 저자 불명이라고 소개되고 추적 선생을 저자로 소개한 책은 한 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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