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24 08:5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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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끔 등뼈 아래 숨어 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에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내리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김기택, ‘꼽추’)

참 가슴 뜨끔하게 하는 시다. 낮다, 구부러졌다, 어둠에 눌려있다, 이런 표현에서 바로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단다. 허리를 구부리고 있으니 얼굴은 당연히 낮은 위치에 있을 것이고, 등뼈 아래에 묻혀있다는 논리,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아니, 아예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의미조차도 두지 않고 있다. 그는 항상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지만 마치 어둠에 눌린 것처럼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못하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그가 구걸한 동전 몇 푼으로 긴 여름 한나절을 버틸 수가 있을까.

무더운 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대로에서 자는 듯 조용히 임종을 맞이했지만, 그나마 사람들은 그의 죽음조차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굽은 등에는 웅크려진 살덩이가 마치 커다란 알처럼 보인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태아처럼 그렇게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삶의 무게가 되었던 굽은 등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그 알의 껍데기를 벗기고 금방 환생을 하려는 듯 느껴진다는 시인의 상상력이 심도가 깊다.

알이라는 것은 우리 역사상 난생설화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결코 생물학적인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알을 언어학적으로 분석을 해 본다면, 경북 지방에서는 아기를 ‘알라’라고도 하는데, 알라의 ‘라’에서 모음 ‘ㅏ’는 중복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를 생략해 버리면 ‘알’이 된다. 이 ‘알라’의 측면에서 볼 때, 난생설화가 유독 남쪽으로 많이 분포된 감이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다. 난생설화는 북쪽으로는 고주몽 설화뿐이지만, 남쪽에는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김수로, 모두가 ‘알라’(알)로 탄생했다는 점은 특별할 것이 없다는 논리가 된다. 그러므로 태아(알라)처럼 웅크려 자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탄생이 임박했다는 논리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알(알라)은 시인만이 느낄 수 있는 나직한 태동으로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다, 마침내 고주몽의 탄생 설화처럼 종일 빛이 내리고 있던 어느 날 꼽추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죽음)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보이지 않음(죽음)은 반드시 죽음으로 포장되는 거창한 귀천, 승천 이러한 개념보다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어디선가 환생이 되었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시인의 생각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꼽추’는 정말 의미 깊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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