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여름, 그녀가 갔습니다
아침을 열며-여름, 그녀가 갔습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30 15: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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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여름, 그녀가 갔습니다

그녀 머리 위의 모자는 봄이면 가장 자주 바뀌었다. 어느날엔 무늬 없는 연분홍색이다가 또 다음날엔 남색 바탕에 자주색 꽃무늬로 된 모자가 날아갈듯 날렵하게 그녀 머리에 얹혀있었다. 모자의 모양으로만 보자면 다양한 건 아니었고 거의 한 모양이었는데 챙이 그리 넓지 않고 구김이 없는 심플한 모양의 모자를 색깔로 분위기를 낸다는 식이었다. 아무튼 그녀가 모자를 쓰지 않는 모습은 보지 못했었다.

선글라스 또한 그녀가 멋을 내는 소품으로 자주 사용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쭉 갈색 알로 된 선글라스를 얼굴에 척 멋스럽게 걸쳐두었다. TV 건강프로그램에서 사시사철 쏟아지는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그걸 착용하라고 권하기도 하니 그리 이상할 건 없는지? 알이 좀 크다 싶은 갈색인데 계란처럼 기름하게 둥글고 통통하고 뽀얀 얼굴에 곧잘 어울렸다는 건 우리 이웃들이 인정했다.

그녀의 옷? 지금 얘기 하려한다. 설마 머리엔 사시사철 모자에 선글라스로 장식하곤 몸은 벌게 벗고 다녔겠는가? 그녀는 원피스를 자주 입었다. 그녀가 저세상으로 간 지금 원피스 입은 모습만 기억된다. 남색바탕에 커다란 꽃과 아메바 무늬가 화려한 원피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남색과 분홍색을 좋아한 듯하다. 남색도 짙고 연하기에 따라 보는 맛이 달랐다. 분홍색은 진하기에 따라 더 다양해진다.

물론 올해엔 볼 수 없었지만 여름이면 난 이파리가 시원하게 뻗은 접이식 부채를 들고 다녔다. 남색바탕에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분홍색 모자를 쓰고 부채로 할랑할랑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던 퉁퉁한 그녀의 모습, 이제 추억이 되었다. 나이 80이 되던 해에 그녀가 사는 작은 아파트의 관리실 일을 볼 정도로 건강했었다. 그녀가 그 일을 하는 동안 티끌 하나 없이 이백여 평되는 아파트 마당이 깨끗했었다.

그녀는 모로 누워 낮잠을 자는 중에 자신이 속한 세상을 달리했다. 마치 나무그늘에 잠시 누울 때 두 손을 기도하듯 마주해서 베개를 대신하듯 두 손을 베고서 말이다. 그녀의 별세 소식을 들은 우리는 놀라면서도 내심으론 기어이 마음먹은 대로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 그녀는 아무도 몰래 스스로의 자연사를 서서히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84세 일기로 기획을 마무리 했다.

청상으로 그녀는 삼남매를 키우느라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손녀손자까지 다 키워냈다. 근데 손자손녀가 성년이 되니 할머니 잔소리가 싫었고, 이를 눈치 챈 그녀는 따로 방한 칸 얻어 살림을 났다. 이제 가족에게든 이 세상이든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마지막을 기획했다. 안 먹으면 죽는다는 진리를 붙들고. 그렇다, 그녀는 곡기를 서서히 끊고 일 여년이 지난 며칠 전 결국 원하는 대로 자연사 하였다. 삼가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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