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삼일신고 세계훈
아침을 열며-삼일신고 세계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02 17: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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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삼일신고 세계훈

우리나라를 가장 우습게 보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은 바로 일본과 중국이다, 일본은 우리를 쓸개 빠진 민족으로 보고 중국은 줏대 없는 무리라고 여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왜인들에게 국민의 반을 도륙당하고도 채 40년이 되기도 전에 병자호란을 당하여 북방의 청에 무릎을 꿇고 군신의 굴욕적인 수치를 당하였다.

유교적 문약과 국방력을 무시한 정책으로 인해 결국 호시탐탐 기회를 보던 일인들이 고종 때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을사늑약을 완성 시켰다. 우리는 40여 년 국권을 잃고 노예 생활을 하였다. 좋은 것이라고는 모조리 다 빼앗겼다. 특수 부대 등 막강 해병을 갖춘 지금도 누구 하나 나서서 복수하자거나 우리도 한번 쳐들어가자는 말이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일본은 우리를 보고 저놈들은 쓸개가 없으니 쳐들어갈 수 있는 명분만 꾸준히 쌓아서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도 문제이다. 독도를 우리가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일찍부터 교육해 반감을 유도하여 일본국민 특히 군인들에 대한 침공 당위성을 완성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어려워진 저들의 경제는 우리의 전쟁만이 그들의 해답이다. 그래서 남북 간 사이가 좋아지면 가장 짜증나는 쪽이 바로 일본이다. 한편 중국은 우리를 오랑캐라고 여긴다. 오랑캐들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그중 뚜렷한 점은 아둔함이다. 아둔함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을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였던지, 나의 뿌리 및 정신적 줄기는 어디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정통성은 어디까지 흘러갔는지,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우리가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중국이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향교가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때가 되면 지역마다 목에 힘깨나 주는 어르신들이 예복을 갖추어 입고 자기 나라 성인인 공자를 극진히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대성현이라 부르며 공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 자연히 우리로부터 중국은 스승의 나라가 된다며 그들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이런 시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고 그 정체성의 핵심사상은 바로 천부경적 삶의 방식이다. 천부경적 삶의 핵심은 바로 ‘인중천지일’이다.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의 이치가 다 스며들어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 속에 참된 인간존중의 가치가 빛나는 사상이다. 우리가 우리 정신을 놓아 외적으로부터 설움을 받은 것은 인간이 인간을 무시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다스리는 자들이 가장 살펴야 할 덕목이다. 천부경을 보다 알기 쉽게 풀어둔 것이 바로 삼일신고이고 심일신고를 더욱 잘 풀어놓은 것이 참전계경이다. 세계 철학계의 석학들은 천부경을 무척 궁금하게 여긴다. 81자인 천부경을 알려면 먼저 참전계경과 삼일신고를 익혀야만 한다. 삼일신고 중 진리훈은 다음과 같이 우리 천손들을 깨우쳤다.

사람과 우주 만물은 다 같이 근본이 되는 하나에서 나왔으며 이 하나는 세 가지의 참됨을 받으니 이는 본성과 생명과 정기이다. 사람은 이 세 가지를 온전히 받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는다. 참 본성은 착함도 악함도 없으니 가장 밝은 지혜로 두루 통하여 막힘이 없고 참 생명은 밝음도 흐림도 없으니 다음가는 밝은 지혜로 어리석음이 없으며 참 정기는 두터움도 엷음도 없으니 그다음 지혜로 만 가지 기틀을 잘 지켜 이지러짐이 없다.

따라서 누구나 근본이 되는 하나로 돌아가면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뭇사람들은 미혹하여 세 가지 망령됨이 그 뿌리를 내리니 이는 마음과 기운과 몸이다. 마음은 본성에 의지하는 것으로 선악이 있으니 착하면 복이 되고 악하면 화가 미친다. 기운은 생명에 의지하는 것으로 청탁이 있으니 맑으면 오래 살고 흐리면 쉬이 죽는다. 몸은 정기에 의지하는 것으로 후박이 있으니 두터우면 귀하고 엷으면 천하다. 참됨과 망령됨이 서로 마주함에 세 갈래 길이 있으니 이는 느낌과 숨 쉼과 부딪힘이다.

이 세 가지가 굴러 다시 열여덟 경계를 이루니 느낌에는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성냄과 탐냄과 싫어함이 있고 숨 쉼에는 맑은 기운과 흐린 기운과 찬 기운과 더운 기운과 마른 기운과 젖은 기운이 있으며 부딪힘에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과 음탕함과 만짐이 있다. 뭇사람들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넘쳐남과 모자람을 서로 섞어서 이 여러 경계의 길을 마음대로 달리다가 나고 자라고 늘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깨달은 이는 느낌을 그치고 호흡을 고르고 부딪침을 금하여 오직 한뜻으로 나아가 망령됨을 돌이켜 참됨에 이르고 마침내 크게 하늘 기운을 펴니 이것이 바로 성품이 열리고 공적을 완수함이다. 우리는 천손들이다. 우리는 하늘이 절대 버리지 않는다. 천손들이 지손들과 다른 점은 기운을 알고 기운을 잘 썼으며 마지막에는 가장 근본이 되는 기운의 자리로 돌아간다. 홍익인간은 천지기운이요, 이화세계는 천지마음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대운이 왔다. 머지않아 통일이 될 것이다. 빈틈없이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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