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기다리기로 한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기다리기로 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08 15:1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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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기다리기로 한다

기억이 날마다 기척을 버리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말을 너무 써서
가슴이 다 닳았기 때문일까
바람의 한쪽 끝을 잡아

젊은 몇 년에 걸어놓고
가슴을 펄럭이면
유목의 초원에서 흘러내리던 귀

희망은 누구의 몸에서 살다 나온 걸까
앵무새의 말이 들리는데
기억은 벼려도 다시 돋는 잡초인가

밤거리 포장마차에서 출렁이던 질문들
아무리 새 떼처럼 퍼득이지만
하룻밤의 빈손엔 공중이 들려있다

태풍이 없는 기억의 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바람의 말을
가고 오지 않는 가슴에 슬쩍 넣고
기다리기로 한다.

(이정모, ‘기억의 귀’)

이정모 시인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몇 번의 굴곡이 있었다. 모두 다 그러하듯 살다 보면 본의와는 다르게 남들로부터 오해나 피해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을 것이다. 사람 좋은 이정모 시인 역시 그러한 상황을 한번 당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경우 사람마다 해결방법이 다르겠지만, 시인의 경우는 해결방법이 없는 듯 있는 듯한 것이 좋다.

사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좋았던 옛 추억이라면 천만번을 기억해도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과거라면 어떨까.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개인사)을 생각할수록 가슴이 닳아 문드러진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인데,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는 사실과 다르게 소문이 떠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소문이란 원래 억척이 몰고 오는 과장한 특징과 재빠르게 멀리 돌아다닌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 더 힘들다는 사실이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먼 지역까지(유목의 초원) 흘러간 소문(바람)이 다른 사람들의 귀에까지 흘러가게 하는 이 괴물 적인 존재가 때때로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소문이라면 모르겠지만, 의미 없는 앵무새의 소리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소문이라면, 그리하여 아무리 부정을 해도 잡초처럼 계속 반복된다면, 그리하여 밤새 지인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는 시간에도 새 떼처럼 반복되어 가슴에 파장을 일으킨다면…소문에 관한 질문 공세에 대해 아무리 허공을 향해 아니라고 부정을 해봐도 별 소용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소문이라는 것이 전혀 사실무근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바람(소문)이 진화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은 어쩔 수 없이 그냥 가슴 속에 묻어두고 소문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에빙하우스(Herman Ebbinghaus)는 무의미한 어떤 지식 군들을 반복적인 복습을 하지 않으면 48시간 이내에 급속히 망각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특별한 소문이 멈추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퍼드리는 사람이야 금방 지나 가버리는 시간이겠지만, 소문의 중심에 위치한 당사자의 처지에서는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 번 생각한 후에 말을 해야 하거나, 한번 뺏은 말에 대해서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무심히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말이라 정말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이정모 시인의 시 <기억의 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도 있게 생각하게 해 주는 명상시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심각한 루머(rumor)에 휘말렸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좋은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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