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새치기 하지마세요"
"거, 새치기 하지마세요"
  • 전수홍 기자
  • 승인 2012.08.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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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여수세계박람회를 다시 찾았다. 우리 차를 여도초등학교 운동장에다 주차하고 아래 육교를 건너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12시 5분 전부터 서서 4번 차를 기다리는데 30분이 넘어도 줄이 줄어드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사이 버스 서너 대가 왔으나 빈 좌석이 몇 석 안 되는 상태에서 온 차가 정차를 해도 그 자리에 앉을 정원만 태우고 가는 바람에 줄은 거의 그대로였다.

그런데다 설상가상으로 새치기까지 기성을 부렸다. 긴 줄을 가로질러 정류장으로 가 벤치에 앉아서 다른 차를 기다리는 척 하고 있다가 차가 오면 벌떡 일어나서 차문으로 우- 달려들어 먼저 타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앞줄에 선 사람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0분을 더 기다린 끝에 차가 오자 이런 현상이 또 반복되었다.
“거 흰옷 입은 분, 새치기 하지마세요! 맨 앞줄 어르신, 저 사람들 새치기 하지 못하도록 막으세요!”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게다가 쓰고 있던 양산은 언제 접혔는지 내 오른 손 끝에서 그 사람들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나의 이 외침과 행동이 반복되자 버스 문 입구까지 갔던 그와 그 일행들이 주춤하면서 나를 돌아봤다. 나의 양산이 그를 정조준 하고 있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나더러 “그 손 좀 치우라!”며 뒤로 물려 섰다. 시내버스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었던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그 아내도 함께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났다.
그 버스는 그렇게 떠났다. 그래도 내 앞 줄로 10여명이 더 남아 있었다. 이런 곳에 와서 저런 행동을 하는 어른을 자기 부모라고, 새치기까지도 따라해야하는 아이들은 엄마 손 잡고 무단횡단 하는 아이만큼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 이 흰옷 아저씨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시비를 걸었다. “내가 차를 탄 것도 아니고 차에 발을 올린 것도 아닌데 왜 나를 새치기 했다고 우산으로 지목을 하느냐!”며. 적반하장이란 말은 이때 딱 쓰라는 말 같았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뒷줄에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갈 것을 썩 그리 잘 한 것도 없고 억울해할 것도 없는데, 괜히 욱하는 마음에 하늘보고 침을 뱉어 봐야 제 얼굴에 다 떨어질 이 상황이 아닌가. 남들은 한 시간 가까이 땀 줄줄 흘리면서 줄을 서있는데 자기들은 그늘진 의자에 앉아서 노닥거리다가 버스를 보고는 쏜살같이 일어나 그 앞으로 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아내와 자식을 동반하고 손에는 책까지 들고 있었다. 그 책이 무슨 책인지가 정말 궁금했다. 설마 <정의란 무엇인가>는 아니었겠지. “이런 일 처음이니?” 곁에 있는 그의 딸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동안 아내에게는 남편의 이런 모습이 어떻게 내면화 되었을까? 혹시 그가 입은 그 흰 티셔츠도 자기 이미지 관리를 위한 고도의 연출은 아니었을까?
정의와 질서를 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그에게는 시간이 가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오겠지만 이를 이해하기에 너무 어리석다면 그는 영원히 그걸 이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생긴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정의와 질서에 관해 윤리와 도덕에 관해 그 미덕을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면 새치기는 아무리 하라고 부추 켜도 안 한다. 줄의 맨 앞사람은 처음부터 새치기를 못하게 강력히 막아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에게 어떠한 상황에서고 새치기는 반칙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 매뉴얼이 제대로 가동되었더라면 그날 내가 우리 아이들 앞에서 싸움닭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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