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일붕 서경보 종정 107주년에 붙임
도민칼럼-일붕 서경보 종정 107주년에 붙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09 16: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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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
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일붕 서경보 종정 107주년에 붙임

일붕 서경보 종정(一鵬 徐京保, 宗正)은 1914년 10월10일 제주도 남제주군 서귀포에서 출생하여 1996년 6월29일 83세(법랍 64년)로 작고한 불교학자이자 외교에 통달한 대승려로 지난 6월29일이 탄신 107주년을 맞았다. 생전에 살았던 부산 금강사(주지 혜성스님)주최로 기념식 및 헌다례 의식을 가졌고, 삼장법사 일봉 서경보 종정 삶이 소개된다.

스님은 1953년부터 1956년 진주 금성암(망경동)에 주석하며 학자의 길을 걸었고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교수, 경남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는 동안 향토 교육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스님의 특징 있는 선필을 적립하는 계기가 되어서 훗날 세계 속에 한국 불교선학과 선필을 최초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 널리 알렸던 진인(眞人)이 된다. 박사학위 126개, 저서 1043권, 통일기원비 757개 건립, 선필(禪筆) 50여만점, 최대 석굴법당 건립 등 5개 분야에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현재까지 그 기록은 경신 없이 유지됨은 불가사의한 활동이다. 진주에 주석할 때 스님을 찾았던 사람에게 꼭 선필을 써 주었고, 자신이 스스로 고행을 만들어 수행의 길을 행하는 노력이 감격적이다. 눈을 감고 잠자는 것 아니라 눈을 뜨고 잠을 잔다고 일명 ‘서도깨비’란 새 호칭이 생겨 지금까지 암자의 교육 훈으로 전한다,

어느 날 20여명의 학내 교수를 동행하여 함께 할 자리에 호명을 지어 선필로 내렸다. 필자는 용운거사(龍雲居士)란 호명을 받아 지금도 간직한다. 한 토막의 추억이 되었으나 1966년도 여름 100여명의 학생을 인솔하여 제주여행에 배를 타기위해 목포행 야간열차를 타고 운행 도중의 기차 속에서 술 취한 해병군인이 술주정을 하자, 정의에 넘친 학생이 제지하다가 난장판이 되어 부득이 어느 역에 열차를 세워 군인을 헌병대에 인계하는 과정에서 스님이 쓴 용자(龍字) 선필 1점을 전하여 학생을 구원한 기적 같은 은덕이 생각난다.

종정이 남긴 각종 연보를 검토한바 누구나 가능한 수행 행위가 아니었다. 불가능한 행위를 통하여 가능성 있는 행위로 성취시켜 깨우침의 길,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완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 세계 속에 귀한 보배보다 더 귀한 한국인으로 존경하고 싶은 진인(眞人)으로 기억된다. 이날 헌다의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스님의 수행정진과 남긴 업적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주어졌고 생애에 활동한 업적을 살펴보았다.

스님은 1932년 19세 제주도 산방굴사(현 광명사)에서 출가하여 1933년 20세에 지리산 화엄사 대강백을 거쳐, 1935년 전북 위봉사에서 사미과, 사집과 수료로 승려가 된다. 유춘담 스님에게‘일붕’법호를 받고, 1936~1939년 서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박한영 대강백의 수제자가 된 이후 금산사, 월정사 상원암 선원장, 1946년 월정사 도움으로 일본 경도 임제종 묘심사 임제전문대학 전문부에 유학, 졸업 후 1946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거처 1950~1953년까지 원광대, 전북대 강사 1956년 부산대 철학과 교수, 1958년 태국 방콕에 열린 제5차 세계불교도우의회에 처음 하동산 종정, 이청담 총무원장과 함께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1961년 미얀마 랭군의 상가대학 교환교수, 1962년 경주 불국사 주지, 자유중국 삼장학원에서 삼장법사(불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전국 불교청년회 총재, 부산 금강사에 주재임하며 1963년 부산 동아대 문리대 철학과 주임교수, (관선)부산시의회 의원,1964년 해동 불교역경원장, 1966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 워싱턴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하와이대학 교환교수, 1965년 한국 불교 최초로 해외(미국) 포교사로 추대된다.

1969년 미국 필라델피아 주립 템플대학에 연구 및 교수생활, 미국 템플대학에 철학박사학위 및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겸 대학장, 대학선원장, 미국 세계중앙선원장,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 종지 부위원장,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서울 불광동), 1971년 국술원 고문, 말레이시아 불교종단의 명예 대승정, 홍콩 불교대학 명예원장. 1972년 한미 국제불교수도원(부산 금강사) 원장, 베나레스 학생회 총재, 1973년 중국 문화대학 등을 비롯하여 타이베이원화대학, 충남대에서 받은 박사학위가 총 126개, 말레이시아 불교종단의 명예대승정, 한중불교학술연구회장, 자비원장학회 총재, 세계선학회 회장 사단법인 일붕선종회 총재 및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중요저서로는<불교입문강화(佛敎入門講話)>(1948)·<불교사상>(1979)등 1043권을 비롯한 번역서가 있다.

비록 107년을 지난 한 승려의 삶이라 하겠으나 오늘에 살아가는 후학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목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스님이 남긴 불가사의한 업적을 연마할 그날을 기대하며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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