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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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13 16:0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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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선택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는 일, 외출할 때 옷을 고르는 일들은 사소한 선택이다. 그러나 결혼과 직장을 선택하는 일은 인생의 큰 선택이다. 큰 선택은 숙명이다. 매사에 재빠른 결심을 하는 경우도 있고, 선택의 기로에 서서 망설이다 포기할 때도 많다. 물레방아의 흘러내린 물을 되돌릴 수 없듯이 시간도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인생사 모두가 선택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을 뜻하는 영어단어인 select는 라틴어인 selectus에서 파생되었는데 ‘어딘가로부터(from)’, ‘무언가를 분리해서(apart)’취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선택이란 무언가를 취함과 동시에 다른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사이의 C(Choice, 선택)’라고 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조사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은 하루에 150여 차례 선택을 한다고 한다. 그중 신중하게 고민하며 선택하는 횟수는 30여 차례에 불과하고 선택행위에 만족하는 경우는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고 했다. 고민하든 안 하든 간에 어떤 선택도 후회와 미련을 남긴다. 당초에 생각하고 있던 두 갈래 길을 모두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을 두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선택한 길에 집중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설령 선택한 길이 가시밭길이라 하면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의 용기와 가치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 영국 시인 존 밀턴은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기 마련이며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곧 성공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이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선택의 결과이고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시시각각 내리고 있는 선택으로 결정된다. 모든 선택의 결과는 남의 탓이 아닌 자신의 탓이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천보(天寶)의 능력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속성이 있다. 자신만의 동굴에서 빠져나와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면 가능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 ‘어떤 선택을 해도 가망이 없어’라고 좌절하는 것은 금물이다. 성취의 길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의 틀을 깨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인생을 자신이 설계하는 대로 사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선택사항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선택이 불가능해지는 ‘선택의 역설’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베리 슈워츠 교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주변을 조사했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쿠키는 175종류, 잼은 85가지나 되어 소비자의 선택을 마비시킨다’고 했다. 이른바 ‘선택의 피로’, ‘선택의 고통’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선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심리쇠약을 유발하거나 학대까지 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은 일상 속 선택의 순간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일갈했다. 애플에 복귀한 다음 제품 종류의 70%를 없애고 선택과 집중으로 애플 브랜드를 재건했다. ‘무엇을 취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다.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습관들과 과감히 결별하는 용기는 바로 ‘버림의 예술’이다. 이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버린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 때문이다. 선택의 대상이 많을수록 아쉬움은 더 커진다. 그래서 선택할 자유는 곧 실패할 자유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삶이 괴로울 때는 현실 회피적인 선택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진하려면 편안하지만 발전가능성이 작은 선택을 하기보다는 거북하고 싫지만 가능성이 큰 선택을 해야 할 필요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숲 속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났을 때 남이 덜 다닌 길을 가보는 게 좋다. 그곳에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래서 혼자서 풍찬노숙하면서 명산들과 해안선들을 종주도 해 보았더니 그곳에는 늘 매력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깨달음도 몇 개 건지기도 했다. 토목을 전공했지만 인생 후반기에 인생철학을 파고 들어보니 이곳이 더 매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어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도 인생의 근본문제에 대해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왜냐고? 좋은 죽음을 선택하려고…? 변호사 시절 ‘성희롱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던 고위관료가 비서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하자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새겨 보았다. 그는 성추행이라는 선택을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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