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충혼(忠魂)
안중근 의사 충혼(忠魂)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8.1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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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택/진주문화원 부원장

가뭄이 계속된 폭염 속에 지난 6월 진주 향교 유도회 회원과 함께 성균관, 창덕궁,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차례로 답사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을 뭉클하게 한 곳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었다.

필자는 말로만 듣고, 책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안중근 의사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리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필요한 자료들을 메모하고 사진을 찍었다.
안(安)의사에 대한 행적과 감명 깊은 글귀, 성장과정, 가정환경 등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감명을 받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 바치신 거룩한 정신에 고개 숙여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며 그 날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떠 올려보고자 한다.
1년 열두 달 중에서 가장 뜻이 있는 달은 3월이다. 10일은 위대한 선각자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선생이 옥고로 순국한 날이요, 26일은 안중근(安重根)의사(義士)가 32세의 젊은 나이에 여순(旅順) 감옥에서 처형을 당한 날이다. 민족혼이 힘차게 분출한 달이요, 애국정신이 뜨겁게 폭발한 달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지식과 기술을 바치는 일은 쉬운 일이다.
돈을 바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밖에 없고 한번 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을 국가에 바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목숨을 바치는 것은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던진 사람 앞에서 무조건 고개를 숙여 그 분의 애국 충정을 되뇌어야 한다. 그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고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안(安)의사는 황해도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漢學)을 열심히 배우고 17세에 천주교에 입교하여 영세를 받았다. 안 의사의 뜻은 구국제민(救國濟民)에 있었고, 국권회복(國權回復)에 있었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져가는 비운을 바라보며 열혈청년 안중근 의사는 고민하고 분노하였다. 또한 교육을 일으키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나라의 힘을 기르는 근본이라 믿고 막대한 재산을 모두 팔아 진남포에 두 학교를 설립하였다. 하나는 삼흥(三興)학교요, 또 하나는 돈의(敦義)학교다. 삼흥(三興)은 세 가지를 일으키자는 것이다.
첫째는 흥국(興國). 즉 나라를 일으키자는 것이요, 둘째는 흥민(興民). 즉 민족을 일으키자는 것이요, 셋째는 흥사(興士). 즉 선비를 일으키자는 것이다. 돈의(敦義)는 의(義)에 두텁고 돈독하다는 뜻이다.
이 두 학교는 황해도 진남포에 있다. 안(安)의사는 구국의 큰 뜻을 펴기 위하여 학교를 친지에게 맡기고 북간도(北間道)로 갔다. 그리고 의병(義兵)운동에 투신하여 일본군과 용감하게 싸웠다. 1909년 열두 동지를 규합하여 단지동맹(斷指同盟)을 맺었다.
안 의사는 약지의 마지막 손마디를 잘라 붉은 피로 태극기에“大韓獨立󰡓의 네 글자를 썼다. 약지의 한 마디가 없는 안 의사의 왼손 사진을 보았을 때, 진주 향교 유도회 회원들은 그의 뜨거운 애국의 용기에 고개 숙여 묵념을 올렸다.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1909년 10월26일 아침 10시. 만주 하얼빈 역에서 우리의 원수인 이등방문(伊藤博文)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孝道)다󰡓는 안 의사의 어머니 조(趙)마리아 여사의 말씀이다. 과연 의인(義人)의 자당(慈堂)이시다.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가 손수 지어 보내신 하얀 명주 수의(壽衣)를 입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교육자요, 문장가요, 뛰어난 서예가였던 안 의사는 여순 감옥에 있는 동안, 안 의사의 고결한 인격에 감동을 받은 일본인에게 정성껏 글씨를 써 주었다.
논어(論語)를 애독한 안(安)의사는 공자(孔子)의 글을 많이 썼다. 필자는 200여점으로 추산되는 글귀 중에서“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글이 가장 감격스럽다.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어라󰡓는 의미가 담긴 글이다. 이것이 지사(志士)의 늠름한 기상이요 선비의 용감한 정신이다. 안 의사는 이것을 몸소 실천했다. 안 의사의 필봉(筆鋒)은 힘차고 그의 글씨에는 생기가 약동한다.
서울 남산 중턱의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 우뚝 서 있는 길이 8m가 넘는 하얀 화강석에 큰 글자로 아로새긴 이 글씨는 천추만대(千秋萬代)에 빛나는 안(安)의사의 위대한 애국혼(愛國魂)의 상징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민족의 정기를 높이 세우신 이여! 역사의 파도위에 우뚝 선 대장부여! 한국 혼을 세계에 떨치신 열사여! 나라의 기둥이 된 큰 어른이여! 우리 겨레가 영원히 기억할 의인이여!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留名) 그 날의 감동이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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