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평등주의
아침을 열며-평등주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20 15:5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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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평등주의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났다. 사상혁명으로서 시민혁명의 전형을 일컬어진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의 일부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똑같아야 하는데 가까운 이가 잘 되니 배알이 뒤틀리는 고약한 심보다.

어떻든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하여 남보다 잘 되거나 최소한 같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보다 못한 처지에 놓여지거나 남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 울컥하여 참지를 못한다. 심지어 객관적 평가가 필요한 상대적 평가에서 낮은 평가라도 나올라치면 어김없이 고함소리가 튀어나온다. 이게 사람의 마음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등에 대한 욕구를 매우 강하게 가지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도 마을마다 ‘대동(大同)’, ‘대동제(大同祭)’란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런 전통적 의식이 있는데 하물며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안 아플 리가 있겠는가? 이런 마음이기에 선진국에서는 200년 내지 300년 동안 걸쳐 이룩하였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토대를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단 50여 년에 걸쳐서 이룩해 버렸다. 사촌이 논을 백 마지기를 사면 나는 이백 마지기를 사야하고, 옆 친구가 금이야 옥이야 대접을 받으면 나도 금이야 옥이야 대접받아야 한다. 이런 문화적 뿌리가 있는데 우리가 어찌 오늘날의 ‘금수저’, ‘흙수저’를 심리적으로 견딜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사람 사는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비교우열의 평가를 하거나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대평가로 인하여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삶의 여건이나 기회의 내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른바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이 사회적 차별, 계층화로 전개되고, 나아가 심지어 계급화로 굳어져 사회구조와 체제가 계급구조로 고착될 수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계급이란 사람들 간의 차별단계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지배-복종 관계가 당연시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계급구조의 폐단을 쉽게 고쳐 나갈 수 있거나, 또 계급 간의 이동이 자유롭고 정당하게 이루어진다면 계급구조는 사회질서체제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 문제는 이런 계급구조가 고착되어 도무지 수정 내지 보완 할 수 없고, 심지어 조직 내의 계급구조가 사회적 계급구조로 굳어져 일상에서 횡행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이런 사회는 계급구조로 인하여 병든 사회로 왜곡되기 쉽다. 이런 계급사회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고통과 사회적 비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계급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한 사람은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고만장하고, 눈곱 반만큼의 상대적 열세에 있는 사람은 땅이 꺼져라 통탄스럽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필자의 군대 시절에 대대장 마누라는 병사들에게도 대대장이었다. 공식조직의 국장 마누라는 그 부하직원의 부인들 사회에서 국장이었다. 이런 왜곡된 풍토가 숨 막히게 일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제도와 풍토를 뜯어고치기 위하여 들고 일어난다. 이른바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적 투혼을 발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평등의 모순과 고통을 해소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작동하는 제도다. 민주주의 핵심요소는 ‘사람의 권리’와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평등’을 기본 철학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민주적 가치를 표방하는 국가들은 ‘평등주의’를 지향한다. 기존의 각종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대개의 국민들은 차등의 철폐에 동의하고 잘하는 데에 있어서 박수를 보낸다. 국민들의 이러한 지지에 힘입어 민주주의적 정부는 더 나은 평등을 향하여 거침없이 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아쉬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지지자들의 열광적 덫에 걸려 국가 전체의 역동성을 스스로 갉아 먹는 정책을 취하기도 한다. 이른바 기계적 평등주의로 빠져드는 순간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듯 개인의 창의성, 근면성, 도전에 바탕을 둔 국가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해 버린다. 그리고 국가는 모두 가난해진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몰락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분명히 목격하였다. 물론 시장경제 불평등의 잔혹성은 독재정권 계급 권력의 살벌함과 조금도 다를 바 없기에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로소득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부동산 정책이 오히려 부동산에 의한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교육 평등화 정책이 오히려 소득 기회를 줄여버린 영국병 등의 교훈도 있다.

평등의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지 못하면 또 다른 국가 위기가 도래한다. 지금의 문재인 정권 부동산 정책과 세금 정책, 그리고 일자리 정책을 바라보면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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