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외딴 저 집은 둥글다
아침을 열며-외딴 저 집은 둥글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21 16: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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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외딴 저 집은 둥글다

<외딴 저 집은 둥글다>는 박구경 시인이 며칠 전에 출간 발표한 시집의 제목이다. 출간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지인들은 시평을 하고 여기 저기 신문들은 기사로 붐비는 모양이다. 붐비는 까닭을 시인 박주아가 잘 말해준다. 박주아 시인은 시평을 통해 시집을 집에 비유하며 “서까래는 튼튼하고 방구들은 따뜻해서”라고 했다. 아주 명징하고 적확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백 편에 가까운 시들이 하나같이 제 각각 다른 울림과 다른 빛으로 때론 슬프게 때론 안타까이 또 때론 황홀하게 즐거이 반짝인다. 단언컨대 박구경 시인이 발표한 시집들 중에서 최고다. 그 까닭 역시 단언할 수 있다. 인생의 황금기에 쓰여진 시들이기 때문이다. 매순간이 황금기라고 달리 볼 수 있겠지만 스스로 삶에 임하는 밀도와 세상이 그를 부려먹는 정도의 차이는 엄연하다.

시를 읽으며 시간을 잊은 적이 언제던가. 감성이 칼날 같은 이십 대에 시간을 잊고 책을 읽었던 이후 근래엔 처음인 것 같다. 두 번째 읽는 중에 ‘김장에서 커피까지’라는 시에서 멈칫했다. 멈칫하다 몹시 언짢아졌다. ‘어디에든 꼭 그런 년이 스며들어 있다’는 그 시의 주장에 동의해서였다. 돈 좀 있네 하고 폼을 잡고 분위기 탁, 깨는 ‘그런 년’은 우리 인생 속에 끼여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한 년의 세도가 만만지 않았다/ 그래서 여섯 년이 말을 잃고 있는데/ 어색해진 분위기에/ 집주인 년이 커피를 타왔다/ 그 한 년이 커피가 쓰다고 투덜대기에/ 다른 한 년이 공정 거래란 말을 꺼내 버렸으니/ 커피도 아동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했다/ 착한 커피도 있다고 했지만/ 그 한 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돈 주고 사먹는데 밥맛 떨어지는 소리를 한댔다 (김장에서 커피까지 일부분)

갑자기 수다를 떨고 싶다가 제 이마를 퍽 쳤다. 수다야말로 고도의 기술과 순발력을 요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수다를 시작했으면 수 분 내로 옆 사람들이 빵 터지 도록해야 하고, 말 속에 후에 책잡힐 만한 빌미가 없도록 집중해야한다 하면 그건 수다가 아니고 노동이라 할 란가 어쩔 란가. 어쨌거나 세도를 업고 분위기 깨는 재수없는 것들을 경계 안 하면 발톱을 내민다는 것.

박구경 시인의 이번 시집은 가을벌판처럼 참으로 풍성하다. 읽는 이의 삶마저 그처럼 풍성하게 할 것이다. 당연히 이런 짧은 단상으론 백의 일도 말하지 못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시집에 수록된 ‘평화롭게’의 전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해야겠다.

누구나 돌아갈 때가 되면 가장 간편한 차림이 된다/ 다만 어머니가 들려준 배냇저고리의 착한 기억을/ 손바닥 속에 가만히 쥐고/ 콩꼬투리 돌아나가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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