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왼쪽에서 사진을 찍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왼쪽에서 사진을 찍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22 15:0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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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왼쪽에서 사진을 찍다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다가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왼쪽에 서면 왼쪽을 망각하지 않고
지킬 것 같았다

오른쪽에 서면 빨갱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아
마음이 놓이지만
왼쪽의 불안도 아픔도 느끼지 않고
분노도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중앙에 서면 내가 중심이라는 착각으로
결정권을 쥐려고 할 것 같았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타협도 양보도 내버리고
나에게 투표할 것 같았다

반공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투표장을 떠올리며
나는 왼쪽에 섰다
왼쪽에 서야만
빨갱이라고 욕먹는 사람들을 망각하지 않고
나를 지킬 것 같았다

(맹문재, ‘왼쪽에서 사진을 찍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우파냐? 좌파냐? 보수냐? 진보냐? 정말 갈등과 대립이 이렇게 심화 되어 서로가 으르렁거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서로 간 흰 이발을 드러내고 있으니 정말 걱정이다. 맹문재 시인의 ‘왼쪽에서 사진을 찍다’라는 시에서 현재의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예전 좌익과 우익이라고 하던 오늘날 왼쪽과 오른쪽이 뜻하는 메타포란 무엇일까, 예전에는 왼쪽과 오른쪽이란 이른바 공산주의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으로 대변되었지만, 최근에는 진보냐 보수냐로 갈라진 것 같다. 다소 과장된 것인 듯싶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조차 망설여진다. 오른쪽 줄에 서면 이른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 시인으로서는 다소 안심이 되기도 한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왼쪽에 서자니, 좌파 빨갱이라는 누명을 쓸 수도 있지만, 다수가 그 자리에 있는 서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서민들의 아픔과 가진 자로부터의 부당과 그에 따른 분노에 대해서 귀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중앙에 서자니, 중앙은 중심부이므로 모든 결정을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길까 봐! 그래서 좌우의 대립에 관한 결정을 하기도 힘들 것 같고…참 난감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인은 굉장히 소심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두고 결정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결국, 시인은 아무리 빨갱이라고 욕을 얻어먹더라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왼쪽에 서기로 한다는 것이다.

구한말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은 일본이 병탄하고자 할 때, 이미 대세가 기운 혼란한 세상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식인이 되어서 ‘인간 세상에서 지식인 노릇을 하기가 어렵구나(難作人間識字人)’라고 하면서 자결을 선택한 역사가 있다.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은 선택권이 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가 싶다가도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이 나라가 왜 이 지경에 까지 왔는가를 생각해 보면 저절로 슬퍼진다. 가뜩이나 지금은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하여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거기에다 국론까지 심하게 분열되고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매천의 시가 무심치 않았던 것처럼 요즘 들어서 시인의 ‘왼쪽에서 사진을 찍다’가 무심치 않게 읽어지니 나만의 생각일까, 어서 빨리 내외의 난국을 극복하여 모두가 근심 걱정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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