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가로내띠기의 행복’을 읽다
아침을 열며-‘가로내띠기의 행복’을 읽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28 16: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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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가로내띠기의 행복’을 읽다

세상에…우째 이런 시집이 다 있노! 그렇지, <가로내띠기의 행복>은 시집이고, 시집 중의 시집이오. 저어기 경상도인지 전라도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지리산 아래 어디쯤 골짝 골짝에서 모이신 어른들이 쓴 시를 모은 것이오. 하동 평사리 토지문학제의 한 행사로 ‘문해학교’를 운영하여 인근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오. 평생 글을 읽는 걸 소원한 어르신들이 무척 기뻐하오.

기특한 것은 단순히 글자만 가르쳐드린 게 아니오. 거시기, 시를, 시를 말이오, 칠순 팔순 구순이 된 어르신들이 시를 쓸 수 있도록 도와드린 것이오. 배우신 어르신들이나 가르치신 시인들이 우선 감사해서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오. 양쪽 모두 감사드린다는 말조차 송구하오. 평생 글자를 읽고 쓰기가 소원이다가 이를 이루고 이제 시인까지 되셨으니 얼마나 행복하겄소!

부디 부탁하건데 행여 이 시집을 읽을 때에는 꼭 한번에 다 읽지 말고 하루에 한두 편씩 오래오래 두고두고 읽기를 바라오. 시 한 편 한 편이 산전수전의 인생이 오롯이 들어 차 있소. 얼핏 보면 그 인생이 그 인생 같을 것이나 절대 그렇지 않소. 이 시집을 일궈낸 어르신 시인들의 함자를 한 번 보소. 분악이 종순이 덕선이 막달이 서분이 필순이 말남이…어쩐지 기가 막히오.

저승에 강께 좋소?/삼 년 뒤에 불루로 온다더니/ 어머니 손잡고 댕기요?/ 자슥들 데리고 사니 고달프요./ 몸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힘드요./ 토란국도 좋아했는데…/ 이제 나 혼자 묵으니 맛이 없소/ 아들은 다 사니까 걱정 마소/ 언제쯤 당신 보까 그립소.

김종순 어르신의 ‘영감님께’라는 시 전문이오. 죽은 남편이 자신마저 데리러 오길 기다리는 살아있는 아내의 애틋함이오.

어머니/ 어머니/ 내 어머니/ 어머니 딸도/ 이제 이름 써요/ 박덕선

박덕선 어르신의 ‘어머니’라는 시 전문이오. 아마도 박덕선 시인은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연세보다 많은 연세일 것이오. 그나마 그 어머니는 돌아가셨소. 이제라도 글자를 배워서 이름을 쓸 수 있는 이 스스로 자랑스러운 사실을 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자랑하고 싶었는데. 읽을수록 기가 막히오. 눈물도 나오.

시집의 시 대부분이 사모곡이오. 드물게 오빠를 찬양하고 그리워한 시도 있소.

오빠가 쌀을 씹어서/ 죽을 끓여 먹이기도 했다 카대/ …인자는 오빠한테 잘해주고 싶은데/ 옛날이야기 함서 의좋게 살고 싶은데/ 오빠가 저세상 가삣어/…

정삼순 어르신의 ‘엄마 같은 우리 오빠’ 라는 시의 부분인데 이런 시들을 어떻게 단번에 후다닥 읽어치울 수 있겠소? 한 권 사서 한 편 한 편 곱씹으며 읽어보길 바라오. 각박함이 훈훈해질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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