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은빛 비늘이 반짝인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은빛 비늘이 반짝인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29 16:0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은빛 비늘이 반짝인다

메콩강에 우기가 오면
물고기들은 강 안으로 올라와
수피와 나무 열매를 먹으며 나날을 연명하지만
건기가 오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죽어 초목의 질 좋은 거름이 된다
순환으로 영생을 꿈꾸는 나무와 물고기들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들 팔랑팔랑 나부낄 때마다
물고기들 은빛 비늘이 반짝인다.

(이재무, ‘물고기와 나무’)

며칠째 비가 내리면서 지루한 날이 연속되고 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시 한 편을 소개하게 되었다. 이재무 시인의 시는 대부분 짧은 것이 특징이지만 시를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어들이 어려우냐 하면 특별히 어렵지 않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는 것은 시에 등장한 시어들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 생각에 잠긴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고 그 의미 속에서 많은 교훈과 함께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전 구상 시인을 연상하게 한다고나 할까, ‘물고기와 나무’ 역시 그러하다.

시적 배경이 베트남의 메콩강인데, 이시는 한국의 어느 지방에 있는 강을 배경으로 했다면 자연스럽지 못한 특징이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건기 우기 때마다 들이닥치고 물러나는 것이 금방금방 일어나는 강이 없다는 것과 물고기가 수피 즉 나무껍질과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산다는 말이나 초목이 우거진 곳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이 된다는 사실은 매우 독특하고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메콩강은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의 하노이 쪽으로 흘러 남중국해로 흘러가는데, 하노이는 한자로 하내(河內) 즉, ‘강 안쪽의 도시’ 또는 ‘강 사이의 도시’라는 뜻하고 있단다. 우기(雨期)가 오면 물이 넘쳐 강의 상류 깊은 곳까지 흘러오게 되는데 이때 물고기들이 물을 따라 내륙 깊은 곳까지 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피 즉 나무껍질과 열매를 먹으며 살아가다가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면 이곳에 몰려 있다가 미처 강물 쪽으로 나가지 못했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되는데, 그것이 거름이 되어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공존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이 둘은 교대로 생을 이어가는 셈이니 시인은 이것을 영생이라고 여기는 것이요, 물고기와 나무가 한 몸이라는 견해다. 불교국가인 베트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윤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의 거름으로 자란 나무들은 잎사귀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반짝 거리고 반대로 물고기의 비늘은 나뭇잎처럼 팔랑팔랑 거린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 아니겠는가.

이재무 시인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잘 먹고 잘살자는 뜻으로 오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때가 되면 인연이 오는 것이고 그 인연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누구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보면 대자연의 순리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사회는 특정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의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처럼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생각해보자, 지금은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고 힘든 시기이다. 작은 힘이지만 이 기회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누군가의 위대한 업적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누군가의 도움을 자연스럽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우리 역사상 전설인 경주 최씨 집안이 12대 400년간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처럼 정경유착을 하지 않고 철저하게 내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도움을 줌으로써 이룩한 것이니, 한국판 직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의 전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물고기와 나무’라는 시 한 편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