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체험힐링연합회 하만진 회장
농촌체험힐링연합회 하만진 회장
  • 강미영기자
  • 승인 2020.07.29 17:59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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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천사 농사꾼…“봉사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한다”
▲ 농촌체험힐링연합회 하만진 회장은 “선행에 보답을 바란다면 오래 봉사활동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즐겁게 사는 삶이 인생의 목표다. 봉사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용규기자

제9기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 수상…국가로부터 선행 인정받아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냐”…누구보다 소외계층의 어려움에 공감해
사회활동가·농사꾼·만학도·시인·작사가·작곡가 등 팔방미인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하만진(53) 농촌체험힐링연합회 회장이 제9기 국민추천포상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면서 그의 기부선행이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하 회장은 지난 7월 15일 행정안전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로부터 영예의 대통령 표창을 직접 받았다.

장애를 앓으면서도 35년의 세월동안 궂은 농사일을 묵묵히 도맡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을 위한 선행을 일삼는 ‘봉사왕’ 하만진 씨.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에 방문한 그의 사무실은 온갖 감사패와 기부할 물품들로 빼곡했다.

하만진 회장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애인과 복지단체 등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손을 내밀기로 소문났다. 그 선행이 쌓이고 쌓여 ‘제11회 글로벌 기부문화공헌 대상’, ‘대한민국 칭찬대상 기부 봉사부문 대상’, ‘전국지역신문협회 사회봉사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 15일 ‘제9기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도 수상했다.

하만진 회장이 제9기 국민추천포상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하만진 회장이 제9기 국민추천포상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19살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다친 그의 오른손은 글을 쓰거나 악수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다. 장애로 인해 병역 면제를 받았을 당시 부끄러움과 창피함에 그 사실을 숨기고 다녔다. 거기에 25살 젊은 나이에 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가다 겪은 교통사고는 오른쪽 다리마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젊은 시절엔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 창피해 남들에게 숨기면서 살았다. 하지만 살다보니 후천적 장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그 이후로 마음을 반대로 먹기 시작했다. 장애를 부끄러워하고 숨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나가 공부를 하고 돈을 벌면서 나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돕기 시작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만진 회장 복지시설 후원물품 기탁 모습.
하만진 회장 복지시설 후원물품 기탁 모습.

10여 년 전 그 때의 결심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칭찬과 상을 받기 위해 나선 일은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시작한 선행은 ‘조용한 기부’가 목적이었다. 주위의 소외계층들을 꾸준히 도우다 보니 저절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행보가 언론에 알려진 건 고작 1~2년 전에 불과하다.

하만진 회장은 가장 처음으로 한 봉사활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해양대학교 학생 120명과 함께 함양군 7개 마을에서 집수리, 청소, 교육봉사 등을 했다”고 회상했다.

4박5일의 일정동안 각 마을 회관 좁은 공간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불편한 잠을 청했지만 마음은 그토록 가벼울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남을 위해 베풀고 농업인으로서 같은 농민들을 도와준다는 뿌듯함이 그의 가슴 속을 채웠다. 그렇게 맛 본 봉사의 기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선행을 베풀 때마다 이득과 손실에 상관없이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도움의 요청이 들어오면 단 한 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다는 하 씨는 여전히 16년 된 화물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검소하다.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영수증만 해도 7억원 상당이다. 기부 물품까지 다 하면 15억원이라는 거액에 달한다.

하만진 회장이 진양하씨 대종회 후원물품 1500만원 상당 후원물품을 기부했다.
하만진 회장이 진양하씨 대종회 후원물품 1500만원 상당 후원물품을 기부했다.

하 회장은 “주변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면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그 때마다 농사와 사업으로 조금씩 번 돈을 보태준다. 그러다보니 돈을 제대로 모으지 못 한다(웃음). 차를 바꾸지도 못 하고 해외여행도 가 본적이 없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나 스스로가 장애인이다 보니 그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라며 답했다.

장애인 뿐만 아니라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역시 늘 하만진 씨의 마음을 애달프게 한다. 20세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집안일과 동생 뒷바라지는 모두 그의 몫이 됐다.

떠난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하자마자 담배 농사를 짓고 동네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다. 그렇게 동생들을 대학에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지만 그의 가슴엔 학업에 대한 한이 맺혀 있었다.

그가 형편 때문에 이루지 못한 학업의 꿈은 뒤늦게 펼쳐졌다. 불혹의 나이에 펜을 들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를 들어갔다. 만학도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며 ‘제발 발표시간에 질문 좀 그만해달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졸업 후엔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과정까지 밟았다.

배움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그는 “학창시절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했다. 집안일을 부양하느라 바쁘게 살았다. 친구들이 대학교를 가는 동안 나는 나무 아래에 숨어 있곤 했다”며 “이런 일을 겪었기에 다른 학생들이 공부를 할 때 환경에 좌절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사회에 나가서 노력하면 나처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심겨주고 싶다”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이유를 밝혔다.

농사를 짓고 있는 하만진 회장.
농사를 짓고 있는 하만진 회장.

그런 연유로 모교인 진주기계공고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받은 두 장의 편지가 그의 기억 속에 계속 남아있다. 편지에는 힘든 학업 생활에 힘이 됐다는 말과 전달받은 장학금과 용돈을 보태 어머니께 옷을 샀다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지난 2018년 진주기계공고 학생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주는 하만진 회장은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해줬지만 편지를 준 건 이 두 사람뿐이다. 물론 보답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답가를 받으니 금액을 떠나서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졌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그는 숱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구태여 힘든 점을 떠올리지 않는다며 “선행에 보답이 없다고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걸 원하지도 않는다. 이득을 따지며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봉사활동을 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즐겁게 사는 삶이 인생의 목표다. 봉사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농사를 짓고 있는 하만진 회장.
농사를 짓고 있는 하만진 회장.

하 회장은 사회활동가, 농업인, 만학도일 뿐만 아니라 활발히 창작을 하는 시인이자 작사·작곡가이기도 하다. 2012년 문예사조 시 부문 신인상과 현대문학사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그가 작사한 노래는 오는 10월에 나올 예정이다.

학생 때부터 글짓기에 탁월했던 그가 지금까지 써온 작품들만 해도 앨범 수십 권에 달한다. 그가 보관하고 있는 앨범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적어내린 시를 보여주던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펜을 손에 쥐었다. 살면서 겪는 애환을 글과 가사에 담아 냈다. 대학을 가지 못 했지만 내 삶과 이름을 남기고 싶어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 갔다. 그러다보니 39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많아 한시도 쉴 수가 없다고 고개 저으며 “65살이 넘을 때까지 계속 바쁘게 살아야 한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사업을 하고 나는 농사를 짓는 데다 함께 부부동반 봉사활동까지 다니니 도통 같이 놀러 갈 시간이 없다. 늘 미안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웃었다.

농사를 짓고 있는 하만진 회장.
농사를 짓고 있는 하만진 회장.

앞으로의 미래를 묻자 하 회장은 “당장은 7월 30일에 하동군을 방문해 장애인총연합회에 장애인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건강식품과 파스를 기부할 예정이다”면서 “거시적으로는 통일이 된 미래를 꿈꾼다. 그래서 석사는 경제학, 박사 과정은 통일경제 부문을 공부했다. 미생물과 농업을 연관시켜 통일 이후 북한에서 사업을 펼쳐 농업 전반의 체계를 잡아 식량난을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기부운동연합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비영리단체로 등록할 예정이다. 현재 회원이 70여 명 가량 모였다. 100명이 달성되면 기획재정부에 지정기부금단체 등록도 할 계획이다. 그렇게 단체가 정립이 되면 전국에서 기부금을 모아 기부와 봉사활동을 주된 사업으로 펼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소외계층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꿈 많고 정 많은 하만진 회장. 그가 건네는 밝고 따스한 손길이 모두에게 희망의 빛이 되길 바란다. 강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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