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임진왜란 진주성에 비거 날았다
진주성-임진왜란 진주성에 비거 날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8.05 16:3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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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임진왜란 진주성에 비거 날았다

국립항공박물관, 천문관, 공사박물관, 백제박물관 등에서 비거(飛車)기록물과 전시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이것을 모아 진주 박물관에도 전시한다면 상당한 뜻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완벽하다고 믿는 것 같은데 한양에서 천리가 떨어진 진주 소식을 어찌 알겠는가 임진왜란 때 조선 정부는 위기의 진주성에 군병도 보내 주지 않았는데 진주 소식을 어찌 알았겠는가 진주 비거라는 기록이 없다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해석이다.

비거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은 여러 자료를 보아 확인된다.
인천 모 고등학교에서 2017년에 창의융합 프로젝트 ‘정평구의 비거 연구’를 과학 실측과 구전 설화 등 조사해 여러 조사를 한 바 있다.

진주성에서 확인해 보니 유인 항공기는 아닐 수 있으나 제작자인 정평구 선생이 왜군에게 사람이 탄 비행기로 속여 전진을 교란시키려고 혹은 적의 총탄을 낭비토록하기 위해 대형 연에 무인형 글라이더를 날려 보냈을 것으로 보았다.

김제시 일대에는 정평구(鄭平九)선생이 왜적을 속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진주성 전투와 연계하면 비거가 날았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한다.

세종대왕 때 거북선이 한강에 띄워지고 蔣英實(장영실) 대호군은 천문분야에서 세계 최고였음을 볼 때 임진왜란 전후에 비거가 날아다닌 것으로 확신된다.

<조선의 비행기 다시 날다>라는 책을 보면 비거에 대하여 과학적 실체적으로 확인한 이봉섭 님의 비거 연구에 대하여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대주의 망상에 도취되어 크고 과학적인 것은 중국, 외국에서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라이트 형제보다 먼저 발명한 과학자가 정평구 선생이며 비거일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든 산해경(山海經)에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가 있었고 그림까지 전해져 사실이 확인된다.

신경준 선생은 여암전서 책차제에 보면 김제 정평구 선생이 영남읍성에 포위된 성두에서 30리를 날아올라 친지를 구조했다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측 기록에 보면 1592년 10월 진주성에서 비거가 사용되었음을 밝혔다.

이규경 선생의 <오주연문정전산고>의 비거 변증설에 영남성이 포위되었을 때 성중으로 비거가 날아가 30리 밖으로 이끌어 인명을 구했다. 백장을 날았고 양각풍이 불면 앞으로 나아가고 광풍이 불면 추락한다고 기록되었다. 이규경 선생은 전주부인 김시양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하늘을 올라 산보하듯이 거침없이 날아갔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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