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진해만 합포해전지 관광자원화 멈춰야”
“창원시 진해만 합포해전지 관광자원화 멈춰야”
  • 황원식기자
  • 승인 2020.08.06 17:45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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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민단체·학자들 “합포해전지는 진해 아니다”
창원시 “정황상 전문가 자문 듣고 관광자원화 추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 승리한 합포해전(合浦海戰)의 장소로 알려진 창원시 진해의 한 관광지가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이를 활용한 관광 자원화의 난항이 예상된다.


최근 합포해전이 일어난 곳이 진해만의 학개가 아니라, 마산의 합포(合浦) 또는 창원 성산구 일대일 수도 있다는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이다.

합포해전은 임진왜란 당시 옥포해전과 같은 날 치러진 조선수군의 두 번째 해전으로, 이순신 장군의 함대가 왜선 5척을 추격해 일본군들이 모두 육지로 도망가고 빈 배를 불태운 사건이다. 하지만 과거 문헌에는 해전의 장소가 ‘웅천땅 합포’로 기록돼 이곳이 마산이냐, 진해냐를 두고 학자들 간의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던 중 경남도는 김태호 도지사 재임 시절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관광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합포해전지를 정립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당시 전국의 역사학자들과 경남도 시군지자체장 등이 참여한 ‘21세기 이순신 연구회’의 토론 끝에 합포해전지를 진해 학개로 비정했다.

관광화 돼 있는 진해바다 70리길의 합포해전 승전길.
관광화 돼 있는 진해바다 70리길의 합포해전 승전길.

이에 창원시에도 지난 2014년 진해구 풍호동 일대에 합포해전지 안내판을 세우면서 관광자원화에 나섰다. 현재도 진해바다 70리길과 진해구 대발령 쉼터에 이순신 장군 타워 조성사업에도 ‘진해만에서 일어난 합포해전’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 또한 진해 북원로터리 이순신 동상 옆 안내판과 최근 창원시가 후원한 이순신 업적 유튜브 동영상에도 합포해전지가 진해만이라는 소개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합포해전지가 마산 합포라고 대다수 지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데다가,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와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수 역사학자들 등 합포해전지가 진해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창원시가 역사왜곡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해 논란은 커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진해에 합포(合浦)가 있었나 = 이들의 공통된 논거는 임진왜란 당시 진해에는 ‘합포(合浦)’라는 지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전략연구소 이봉수 소장은 “조선시대 최고의 정밀한 지도인 ‘동여도(19세기 제작)’를 보면 그당시 마산에는 합포(合浦)라는 지명이 있었지만, 진해에는 합포가 없었다”며 “진해구 학개는 원포라고 명시돼 있어 합포해전지가 진해만이라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역설했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도 “동국여지지(1656년 편찬)를 보면 진해 웅천의 포구에 대해서 나오는데 곡포, 웅포, 덕산포, 양곡포, 제포, 주포로 총 6개의 포구가 등장하지만 학개(학포)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합포해전지가 진해 학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당시 진해에 학개라는 마을이 있었고, 그 근처 포구에서 해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학포’라 했을 것이고, 경상도 사람들의 발음 상 ‘합포’라고 불렀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학포(鶴浦)와 합포(合浦)는 한자 자체가 다르니 그들의 논리가 맞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6월 16일 임진왜란 당시 합포해전지의 합리적인 위치를 찾기 위해 경남 시민단체와 학자 등 10여명이 탐사에 나섰다
지난 6월 16일 임진왜란 당시 합포해전지의 합리적인 위치를 찾기 위해 경남 시민단체와 학자 등 10여명이 탐사에 나섰다

◆시민단체·학자들 합포해전지 위치추적 나서 = 경남 시민단체와 역사학자, 시민 등 10여명이 지난달 16일 합포해전지의 합리적인 위치를 찾기 위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함대의 동선을 따라 항해에 나섰다.

이순신 장군이 기록한 ‘임진장초’에 나온 합포해전의 기록을 보면 ‘1592년 음력 5월 7일(양력 6월 16일) 신시(오후 3~5시)에 영등포(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에서 일본군을 추격해 웅천땅 합포에서 5척을 불태우고 창원땅 남포까지 어둠을 헤치고 이동했다’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탐사단은 해질 무렵에 전투를 치렀을 확률이 높고, 일본군이 배를 버리고 도망갔으므로 전투시간은 짧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에 오후 4시에 거제 구영에서 출발해 당시 판옥선의 속도(시속 6km)로 진해 학개까지 걸린 시간을 측정한 것.

그 결과 탐사단은 “6월 16일 일몰 시간은 오후 7시 42분이었으며, 거제 장목 구영에서 학개까지 시간이 5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합포해전지는 진해 학개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 창원 성산구 일대(귀산동·두산중공업)나 마산 합포일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함선이 모두 출동하려면 2시간이 넘게 소요 ▲신시가 정확하게 4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 ▲당시 수군의 속도가 6km가 안됐을 것 ▲오후 6시 이후에 출항했을 수도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합포해전지가 진해 학개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창원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합포해전지 안내판을 진해에 설치하고 6년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반대측 의견을 못 들어봐서 인지를 잘 못했다”며 “우리는 정황상으로 봐서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처음 안내판을 설치한 것은 맞다. 과거에 이순신연구회에서도 진해 학개가 (합포해전지로서) 근거가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황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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