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저고리 유명한 이성자 한복 창원 3호점 진출
색동저고리 유명한 이성자 한복 창원 3호점 진출
  • 김봉철 기자
  • 승인 2012.08.1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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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고집하는 한복디자이너 이성자 원장

▲ 이성자한복의 이성자 원장은 자신의 한복 스타일에 대해 “퓨전보다는 전통을 고집하는 편”이라고 밝히고 “다만 색깔은 시대추세를 따라 밝은 색을 많이 쓴다”고 했다.
전통을 고집하는 한복으로 유명한 이성자 한복은 지난 3월 창원에 지점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 청담점과 청주점에 이은 이성자 한복의 3호점이다. 3호점을 특히 창원에 낸데 대해 경남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시장전망이 좋기 때문이라는 게 이성자 한복 최종복 대표의 분석이다.
이성자 선생이 남편인 최종복 대표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하여 이성자 한복을 연 것은 2000년 9월이다. 처음에는 워커힐에서 이성자 한복을 오픈했다. 시어머니가 한복을 잘 만들어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이 전문적인 한복집을 내어도 될 정도의 실력이 되자 본격적으로 나선 것. 경영과 영업은 남편인 최종복 대표가 맡고 자신은 옷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성자 한복을 내자고 한 것은 남편이 먼저였다. 자신이 경영을 맡을 테니 옷만 잘 만들면 된다는 말에 겁 없이 덜컹 시작한 것이 오늘날 이성자 한복을 가져온 계기가 됐다. 실제 남편은 자신보다 한복을 더 좋아한다. 대학 다닐 때 데이트 할 때도 남편은 자신에게 한복을 사주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한복으로 사업을 하자고 했을 때도 별다른 거부반응은 없었다. 지금도 남편은 자신이 만든 한복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있다.
이성자 한복은 요즈음 추세와는 달리 전통을 강조하는 게 특색이다. 요즈음 한복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퓨전형식으로 가는 경향이 있으나 자신은 전통을 고집한다. 한복은 우리 고유의 전통이 살아있는 것이고 그것을 잘 살리는 것이 한복의 본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고 이성자 원장은 믿고 있다. 그래서 이성자 원장은 되도록 고전에서 나오는 그대로의 변함없는 디자인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한복을 결혼 할 때만 입는 옷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는 이 원장은 한복은 고귀함의 상징이고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는 면에서 옷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전통을 고집하는 이 원장은 그러나 한복의 색상면에서는 밝은 톤을 많이 강조한다. 아무래도 진한 색 보다는 밝은 색이 요즈음 시대정신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는 게 이성자 원장의 분석이다. 나라의 힘이 커지고 자신감들이 충만해서 그런지 밝은 색으로 자신을 표현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게 요즈음 추세라고 한다.
2000년 워커힐에서 시작한 이성자 한복은 점차 규모가 커져 2003년에는 강남의 청담동으로 매장을 이전하게 된다. 또 일년 뒤인 2004년에는 사업장의 규모를 더 키워 현재의 청담동 점으로 이사를 했다. 현재 이성자 한복 청담점은 한복점으로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지하층을 포함해 3개층을 사용하고 있는 이성자 한복 청담점은 지금도 매장이 비좁아 불편할 지경이다.
2008년도에 남편이 좋아하던 도시인 청주점을 열었다. 청주점도 3년 정도 지나니 경영이 안정이 되었다. 경영이 안정되자 남편은 또 다른 지점을 내기 위해 분주했다. 그래서 올해 3월 창원점을 오픈했다. 창원점을 오픈하게 된 것은 집안 올케가 창원에 있어서 원래부터 고객이 있던 지역인데다가 앞으로 경남지역의 시장전망이 좋게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창원점을 내고 3달동안 창원지역을 발로 뛰어다녔다. 한복은 배달이 많기 때문에 그 지역의 지리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남편은 3개월 동안 창원의 지리를 익히느라 구석구석을 다닌 것. 이처럼 남편인 최종복 대표는 한복에 관한한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할 열정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열정이 이성자 한복이 단기간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복브랜드로 성장한 밑받침이 되었다. 남편의 외조가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성자 원장의 말에서 함께 고민하며 열정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가는 금실좋은 부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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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인 최종복 대표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하여 2000년 9월 워커힐에서 시작한 이성자 한복은 강남 청담점, 청주점에 이어 창원에 3호점을 내고 본격적인 경남 공략에 들어갔다. 이성자 원장은 창원점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창원점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어머니에게 한복 바느질 배워

-한복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시어머님이 바느질을 참 잘 하셨다. 그래서 어깨너머로 시어머님에게서 한복을 배우게 됐다. 또 남편이 한복을 굉장히 좋아한다. 데이트 할 때에도 한복을 사줘서 입고 다녔을 정도이다.
-이성자 한복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성자 한복은 전통을 고집한다. 요즈음은 퓨전으로 많이 간다. 그러나 이성자 한복은 너무 변형이 되지 않은 옛 고전의 변함없는 디자인을 고집한다. 저의 한복에 대한 생각은 너무 변화된 모습 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차분하고 귀한 모습이다.
-한복의 색깔은 어떠한가.
▲한복을 신랑 신부들이 많이 입다 보니 아무래도 밝은 톤으로 많이 간다. 예전에는 짙으면서 무게가 이는 색깔을 많이 썼으나 지금은 밝은 톤이 대세이다.
-우리나라 한복 시장 동향은 어떠한가.
▲시장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결혼할 때 준비하는 한복의 가지 수가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많이 줄었다.

한복시장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

-한복 시장에서 이성자 한복의 위치는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이영희선생, 박술녀 선생등이 앞서가고 그 뒤를 이성자를 비롯한 몇몇이 추격하는 형태이다.
-창업은 언제했나.
▲2000년 9월에 했다. 워커힐에서 시작했다.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한복사업을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남편은 워낙 한복을 좋아해서 한복사업을 하자고 했을 때 큰 거부감이 없었다. 
-창업하고 얼마정도 지나니 안정이 되던가.
▲3년지나니 자신이 생기더라. 그래서 점을 강남의 청담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일년후에 같은 청담동의 더 큰 규모로 이사를 했다. 현재의 청담점이다. 이성자 한복 청담점은 지하를 포함해 모두 3개층을 쓰고 있다. 규모가 큰 편이다.

요즈음 결혼 아니면 한복 구매 않아

-한복을 구입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요즈음은 주로 결혼식 때 한복을 구매한다. 일반인들이 한복을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한복 시장은 웨딩시장과 경기를 같이 한다. 웨딩시장이 호황이면 한복시장도 호황이고 웨딩시장이 불황이면 한복시장도 불황이다.
-결혼할 때 한복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되나.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평균 240~300만원 정도 된다.
-청주점은 언제 오픈했나.
▲청주점은 2008년도에 오픈했다. 남편이 원래부터 청주를 좋아했다. 그래서 다른 도시보다 청주점을 내게 되었다.
-창원점을 올해 3월에 오픈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창원에 집안 올케가 산다. 그래서 창원에 원래 고객이 많다. 또 올케집에 오느라고 창원에 자주 왔다. 그러다 보니 창원이 다른 도시에 비해 더 익숙해졌다. 그래서 창원점을 내게 되었다. 물론 창원이 인구 100만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한복 시장 전망이 좋다는 것도 큰 이유다.

창원점 올해 3월에 오픈

-그럼 이원장은 창원점에 근무하게 되나.
▲주로 그렇다. 원래 한복은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인간적으로 친숙한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제가 직접 고객을 상담해야 한다. 그래서 창원점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창원점에 근무하게 될 거다.
-남편이 이성자 한복의 대표로 함께 일하고 있는 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남편의 한복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남편은 전국에 지점을 내고 싶어 한다. 전국을 통일한 다음에는 외국에까지 진출하고 싶을 정도로 열정이 크다. 회사에서는 저는 한복을 디자인하고 남편은 홍보와 경영을 담당한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성자 한복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남편은 어디에 지점을 낼까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경영 방침은 어떤 것인가.
▲일단 고객과 좋은 만남을 가지려고 하는 게 사업의 대원칙이다. 좋은 만남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업이 성공하게 된다. 그래서 고객을 우리와 같은 느낌으로 언제나 대하려고 한다.
-딸들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작은딸이 서울의 청담점을 책임지고 있고 창원점은 사실 큰 딸이 책임지고 있다. 둘 다 한복관련 공부를 했다. 앞으로 이들 점을 딸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다.
-이성자 한복의 히트작은 무엇인가.
▲한복의 배자가 특징이다. 이성자 한복의 배자가 워낙 눈에 띄다 보니 모방하려는 사람들도 함부로는 못할 정도이다. 또 색동저고리도 이성자 한복의 히트작이다. 외국에서도 이성자 한복의 색동저고리를 찾는 사람이 많을 정도이다. 그 이후에 색동저고리가 무수히 많이 생겼다.

색동저고리 이성자 한복 히트작

-그럼 이성자 한복의 색동저고리 짝퉁도 많이 있겠다.
▲그렇다. 예전에 시장엘 갔었는데 어떤 사람이 시장에 있는 한복집에 와서 이성자 한복의 홍보책자를 가져와서는 이대로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을 옆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이성자 한복에서는 비싸서 사지 못하고 시장의 한복집에 가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비록 저희한테 구매하지는 않은 것이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성자 한복의 색동저고리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복뿐 아니라 침구도 있는데 침구도 결혼식 예물인가.
▲그렇다. 이불, 요등 한식 침구와 침대카바등 양식 침구가 있다.
-결혼식 때 침구는 어느 정도 비용이 드나.
▲평균 100만원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실크로 고급스럽게 하는 사람도 있는 데 대부분은 100만원 정도이면 된다.
-진주에 공장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진주시 상봉동에 공장이 있다. 저희는 거기에서만 물건을 받는다. 일부 한복집들이 중국산 원단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데 우리는 철저히 한국산만 고집한다.
-진주의 원단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저는 진주가 한복 원단을 중요 산업으로 육성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한복원단 생산업체들이 영세하지만 시차원에서 육성하면 진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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