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의암댐 인공 수초섬 인명사고
아침을 열며-의암댐 인공 수초섬 인명사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8.12 15:0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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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의암댐 인공 수초섬 인명사고

유례없이 긴 장마가 남긴 상처가 처참하다. 하동 섬진강 강가에 사시는 필자의 고모님도 집안으로 물이 차오르자 새벽녘에 뒷문으로 급히 피난하셨다고 긴박하게 말씀하신다. 물이 빠진 뒤 방에 펄이 채여 봉사단들이 와서 지금도 치우는 중이라 하신다. 냉장고 가재도구 이불 옷가지 음식물 등 물에 담긴 것들을 하나도 쓸 수가 없어서 온통 쓰레기차로 실어 보내셨단다. 그 집에 사신지가 어언 40여 년이 되었는데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고 혀를 차며 숨 가쁘게 말씀하시는 것이 폰으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내가 간다고 하니 올 필요가 없다고 극구 말리신다.

마찬가지로 수해현장에서 올린 생생한 현장의 장면들이 필자가 가입된 카톡, 밴드 등으로 수없이 들어온다. 방송 매체를 참조할 필요도 없이 생생한 장면들이 그대로 들어온다. 이제는 가히 1인 미디어 시대, 또는 정보망의 시대라는 것을 확실히 체험하고 있다.

옛말에 ‘불난 자리는 흔적이 있어도 물 난 자리는 흔적이 없다’라고 했다. 불난 자리에는 타고 남은 재라도 있지만 물 난 자리에는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화재(火災)보다도 수마(水魔)가 더 무섭다는 경험을 전설로 전하는 것이리라.

지금 수마를 당한 무수한 피해 사례들이 온통 안타깝고 비통하다. 그러나 못내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것은 강원도 춘천시의 의암댐 인공 수초섬 인명사고다.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보다 더 가치의식과 위험의식이 뚜렷하였다면, 어쩌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인명사고가 어이없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선박 전복 인명사고는 지난 6일 오전 11시 34분쯤 의암댐 상부 500m 지점에서 발생했다. 하트 모양의 아직 완공되지 않은 인공 수초섬 한 개를 고정하는 작업을 하다가 난 사고다. 인공 수초섬 고박 작업에 나선 고무보트, 춘천시청 환경감시선, 경찰정 등 선박 3척이 빠른 물살에 휩쓸리며 서로를 구하려다가 전복돼 7명이 물에 빠졌다. 1명이 구조되고 4명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2명은 실종상태다. 수초섬 2개 중 1개는 완공되어 삼천동 옛 중도 선착장 인근에 고정돼 있다. 완공하여 납품하여야 14억5000여만원의 사업비를 받을 수 있기에 떠내려가 유실되어 버리면 그만큼 비용이 더 들어간다.

물론 지난 일에는 가정(假定)이 없지만 그래도 만약 이런 비통스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위험한 작업을 수행하였을 현장에 대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의 소회(素懷)도 없이 그냥 소리 소문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고가 일어나 버렸기 때문에 이 사고가 일어난 까닭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여러 말들이 많다.

논란의 핵심은 한결같다. ‘돈보다 사람을 우선해야 한다’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 누구나 그렇게 이해하고, 누구나 그런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이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또 그렇게 말하는 본인이 그 ‘공적 사업’의 의무당사자가 되어 신랄한 책임추궁이 빤하게 예상될 때, 아니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높은 도덕성을 가진 훌륭한 실천적 성향을 가진 사람일 때, ‘돈과 사람’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할 딜레마 상황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은 사람을 우선시하여야 하고, 역시 말도 사람을 우선시하여야 한다 하고, 당연히 이 말에는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런 상황에 부딪힌다면 어떻게 될까? 예측되는 반사적 행동은 수초섬 사고와 별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익 추구’, ‘책임회피’, ‘공적 의무 완수’, ‘소명감’ 등으로 유사한 상황에서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왜냐면 그동안 일어난 각종 대형 공사 사고, 각종 대규모 조직에서 일어난 사고, 각종 시설물 설치와 기타 임무 수행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들의 패턴 때문이다. 사고 때마다 떠들썩하게 개탄하며 법률을 만들고, 안전대책을 세우고, 호들갑을 떨며 교육을 실시하곤 하였지만, 조금만 시간이 흐른 다음 언제 그랬냐는 다시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을 우리는 늘 보아 왔고 또 지금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 근대화의 과정에서, 결핍의 성장 시대를 거쳐 오면서, 사람보다 돈, 인권보다 권력, 한 사람의 여린 마음보다 광기 어린 집단 분위기, 개인의 본질보다 권력자의 지배력이 더 우선시 되었던 시대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개인 비하’, ‘인명경시(人命輕視)’의 풍조에 길들여 온 탓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이제는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당위적 명제가, 그저 입에 발린 슬로건이나 누구나 머리로만 이해하는 추상적 명제가 아니라, 실천적 판단과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이것도 ‘훈련’을 하여야 한다고 본다. 마치 ‘교통신호 지키기 훈련’, ‘소방훈련’, ‘인공호흡 훈련’처럼 ‘인명중시 가치판단 훈련’도 지금 이 시점에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위기 시에 저절로 사람을 중시하는 행동이 즉각 반사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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