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죽은 새는 다시 살아난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죽은 새는 다시 살아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8.19 15:5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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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죽은 새는 다시 살아난다

학교는 유리창이 참 많은 건물
종종 뒷산의 산새들이
학교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

유리창에 숨어 사는 뒷산 때문이라고도 하고
발효한 산 열매를 쪼아 먹고 음주 비행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새가 되고 싶은 유리창의 음모라는 설득력이 있다

유리창에는 새의 충격이 스며 있다
유리창은 종종 깊은 울음을 운다
비가 올 때는 열길 스무 길 눈물의 계곡이 생긴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는 다시 살아나
유리창을 마음대로 통과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산맥과 달님도 마음대로 뚫으며 날아다닌다고 한다

(장인수, ‘유리창’)


재미있는 시다. 장인수 시인은 서울 J고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충청도가 고향인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대부분이 농촌의 서정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 대부분인데, 비해 이번 작품도 도심 속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원래 연의 구분 없이 쓴 시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4연으로 구분해 두었다. 학교에는 유리창이 많고 그 유리창이 얼마나 맑은지 새들조차도 허공으로 착각하고 날아들다가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지만, 아무려면 새들이 날아와 부딪혀 죽는다는 것은 드문 일인데, 이 시를 통해 그 옛날 솔거의 벽화를 연상케 하고 있다.

새들이 부딪쳐 죽는 이유는 세 가지의 유력설이 있는데, 뒷산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실제 산처럼 보여서, 새가 진짜 산으로 착각해서 부딪쳤다는 설, 산에 떨어진 열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발효가 되어 알코올 성분이 있었고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음주운전으로 비행하다 사고가 났다는 설은 아주 재미있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세 번째 설에서 시인의 서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새가 되고 싶은 유리창이 어떻게 하면 새처럼 날아다닐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일부러 새를 유인하여 가까이에서 새를 관찰하기 위해서 저지른 사건이라는 발상이다. 마치 로렐라이(Lorelei)의 전설을 연상케 하고 있다. 그런데 매혹적인 자세로 멀쩡한 새들을 죽음에 이러도록 유혹을 했을까. 일종의 팜므 파탈인 셈인데, 시인은 왜 유리창을 이 사악한 세이렌(Siren)의 여인에 비유했을까,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atlas)의 비극을 연상케 한다. 아틀라스는 거인으로 천계(天界)를 어지럽힌 죄로 제우스에 의해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벌을 받게 되었고, 그 때문에 잠시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그러니 얼마나 다른 지역에 대한 동경이 심했을까 상상이 될 것이다. 유리창도 같은 입장인 듯하다.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서 다른 곳으로는 전혀 가볼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얼마나 부럽겠는가. 아마 시인은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시인은 고교 교사이며, 오랫동안 입시지도를 위해 진학반의 책임자로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그가 왜 이 시를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대한민국은 입시 지옥에 학생들의 청춘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고 볼 때, 새라는 매개는 자유를, 유리창이라고 하는 매개는 학생들이 연상되지 않을까. 교사로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오래도록 학교에 잡아두고 싶은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제도권의 명분을 가지고 피 끓는 청춘들을 억제한다는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네 번째 연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유리창 때문에 죽은 새들이 부활한다는 사실에서나 유리창을 마음대로 통과한다는 사실이나 산맥과 달님까지 동원한 것은 시인의 마음속에는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로워진 세계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메타포화(metaphor)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시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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