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집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집 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8.25 15:1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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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자/시인
백숙자/시인-집 이야기

집이라는 이름은 똑같으나 각기 다른 모습의 천태만상 천차만별이다.

집의 구조나 그 성격 모습도 사람의 겉모습과 성격같이 제각각 모두 다르다. 또 어디에서 어떤 집에 사느냐에 따라 땅값이 다르고 또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가치도 달라진다.

예나 지금이나 빈부의 차이는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멀고 먼 거리이며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며 세상살이다.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언제 또 이사를 가야하나 하고 불안하고 외롭고 마음 한 구석이 비워있어 늘 시리고 허허하다.

옷을 껴입어도 깃이 짧아 손목이 드러나는 것처럼 가난을 두꺼운 이불로 감싸 놓으면 없어지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집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설움과 애환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80년대 중반까지 나는 큰 집에서 아래채와 위채 끝머리 방을 세를 받으며 살았었다.

방 두 개에 부엌 또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단조로운 생활의 구조다. 여러 가구가 화장실 하나에 의존해 사용해도 싸우지 않고 지냈다. 방마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요란하고 큰 아이들은 마당과 골목을 꽉 채우며 뛰어다니던 시절 주인이나 세입자나 구분 없이 서로 나누고 아끼며 살았었다.

어쩌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들어오면 전기세와 수도세는 받는 달보다 받지 않는 달이 더 많았다.

쌀이 떨어졌다고 하면 친정에서 찧어 온 뒤주 속의 쌀을 퍼주며 위로하던 나는 참으로 대책 없는 오지랖이었고 실속도 없는 헛똑똑이었다.

치명적으로 잘못한 결정은 사업이 어렵다고 보증을 서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집을 담보로 내어준 게 우리의 실수였다. 그 뒤 잘못되어 어이없게 홀라당 넘어가 버린 집 필요한 생활품만 들고 달 셋방으로 옮기던 난감하고 비통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 얼룩으로 떠오르면 악몽을 꾸듯이 손바닥에 땀이 고인다. 그렇게 시작된 고생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 사실상 아들들의 미래까지 지장을 가져와 내 인생 내내 두 아들에게 미안하고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 사람을 잘 믿는 어리석음과 내 무능함 때문에.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서울이나 강남의 땅값과 집값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 이야기다

서울의 제일 비싼 집 한 채가 시골의 마을 하나를 모두 사고도 남을 금액이라고 하니 숫자에 취약한 나는 어림으로 짐작도 안 되는 그림 속의 떡 같다.

한도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장마 속의 잡초처럼 자란다. 쑥쑥 자란 잡초는 어느 시기가 되면 저절로 쇠퇴하고 물기가 빠진다. 그러나 집값 땅값은 오르기만 하고 내리막은 전혀 모르는 폭주족 같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여겨지니 내 안의 감각도 모두 사라지는 것 같기도하니 이것 또한 격세지감일런지.

집은 직장이나 사회에서 상처받고 힘든 고단한 육신을 치유하고 식구들과 오손도손 나누는 다정한 가족 속의 작은 우주 아닐까?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그 속에서 우리는 또 힘을 얻는다. 어떤 때는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또 어딘가에 보이는 희망이라는 빛을 보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진짜 참 모습 언젠가는 좋은 내 집의 꿈을 꾸면서.

선진 문명이 비껴간 듯한 90년대의 풍경. 슬레이트 지붕과 쏟아진 볕살에 더욱 눈부신 알루미늄 대문이나 나갈 때와 들어 올 때를 알리는 삐거덕 소리 내는 나무 대문의 손때 묻은 얼룩문양이나 ㄱ자나 s자를 따라 들어가는 골목엔 사이사이 폐가가 끼여 함께 공존하고 있다. 또 때가 되면 옆집의 쌀을 씻는 물소리 저들끼리 부딪쳐 일어나는 그릇들의 소리 또 집으로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도 눈감고 있으면 라디오 음향기기처럼 정겹게 들린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담장의 사이가 이웃간의 마음같이 참으로 가깝기 때문 아닐까.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검소하고 알뜰한 마음은 고층 아파트나 좋은 집을 부러워하지 않고 일상에 충실하며 그날그날 잘 지낸다. 아침마다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이 행복을 전하는 힘찬 나팔을 불어 준다. 골목에 나앉아 더위를 식히고 감자 한 양푼 쪄서 나누어 먹는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 . 문화재같이 인정이 보존된 언덕배기 동네다

각자가 지닌 재능과 능력을 소중히 여겨 좋은 집이나 작은 집이나 가진 것에 감사하며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소망하며 모두 어지고 선량한 마음으로 행복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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