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불신·공포의 사회
아침을 열며-불신·공포의 사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8.26 16: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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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불신·공포의 사회

공자께서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거닐고 있었다. 길가 무덤 곁에서 상복을 입은 여자가 새로 만든 무덤에 엎드려 매우 구슬프게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자는 자로를 불러 슬피 우는 까닭을 알아보게 했다.

자로가 묻자 여자는 울음을 멈추고 답하였다. “이 일대는 사나운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는 무서운 곳입니다. 오래 전에는 시아버지께서 호랑이에게 물려 돌아가시고, 얼마 전엔 남편이 물려 죽고, 이번에는 저희 아이가 호랑이에 물려 죽었습니다” 자로가 물었다. “그처럼 흉악한 호랑이가 있는데 어째서 여기를 떠나지 않았습니까?” 여인이 대답했다. “여기는 무서운 호랑이가 나오기는 하지만 가혹한 정치(苛斂誅求)는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苛政猛於虎)”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에 나오는 말이다.

또한 자공(子貢)이 정치(政治)에 관해 묻자, 공자님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하면서,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대답했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말씀이지만 이 귀중한 지면을 할애하여 다시 한 번 되풀어 보는 것은 좋은 말씀들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공감(共感)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코로나19로 상징되는 국민생명에 대한 위협이며, 경제와 일자리로 일컫는 국민생계에 대한 불안이며, 우리가 어느새 네 편 내 편으로 굳게 갈라져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기를 쓰고 상대방을 잡아먹지 못하여 발악을 하는 불신과 증오가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나답지 않은 행동이지만 최근 필자는 논쟁이 일어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토론’의 장소에는 흔쾌히 승낙하지만,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감정, 결코 주장이라 할 수 없는 자기의 집착을 고집하며, 상대를 기어코 굴복시키려는 자리는 저절로 피하게 된다.

시대풍조 탓인지, 우리의 정치풍토 탓인지, 경제적 환경 탓인지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 어릴 적 없이 살던 그 시절에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굉장히 다급하고 갑갑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마음 넉넉한 인정(人情)은 있었다.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마음은 점점 작아져 서로를 포용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공격하는 투쟁 정신만 늘어나고 있음을 절절이 느끼고 있다.

예전 어떤 교단에서 시작하였던 모든 잘못은 ‘내 탓이고’ 모든 좋은 일은 ‘그대 덕분’이라는 겸허한 반성과 풍요로운 관용의 자기 정화 운동이 세삼 생각한다.

요즘 각박하게 사막화되어가는 풍조는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힘이 센, 여유를 가진 세력들의 편 가름과 그들의 언행에서 나오는 ‘내로남불’에서 번져지는 왜곡된 정의의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진정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무엇을 위하여 우리 모두가 뭉쳐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나 논의 없이 ‘옳음의 기준’이 내 편이나 아니냐가 판단과 감정과 옳음의 기준으로 삼는다. 권력을 가진 집단은 코로나의 확산은 신천지 탓이고, 이태원 클럽 탓이고, 교회의 광화문 집회 탓이라고 단정하여 프레임을 걸어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간다. 눈곱 반만큼도 자기반성과 혁신의 기미가 없다. 권력을 잡으려는 집단은 무조건 정부의 무능 탓이고, 패거리 집단의식 탓이고, 후안무치의 뻔뻔함 탓으로 몰아붙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별집단들 역시 분리 증오 질시의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노동세력 권력, 어디든 끼어들지 않는 곳이 없는 시민단체, 입만 벙긋하면 국민 시민 주민을 말하지만 그들의 의식은 여전히 ‘누가 내 편이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각급 의원들…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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