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침을 열며-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8.30 15: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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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채영숙/영산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교수-천천히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삶에 변화를 주어야겠기에 내 머릿속은 온통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하면서 살고 싶다. 중년이란 이름 절반의 인생길에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람되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는 나이인가 보다. 다른 이들이 좋았다고 얘기하는 것들은 나도 꼭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고 따라해 보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여행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스페인 산티아고에 있다는 순례자의 길이 유명해질 무렵 나 또한 이 길을 떠나고 싶었다. 순례자의 길은 매일 20km를 한 달 정도 걸려야 완주할 수 있는 길이란다. 시간을 쪼개어 갔다 온 친구에게 여행담을 들으며 나도 죽기 전에 꼭 가야겠다는 다짐만 해 본다.

직장인으로서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긴 여정이라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는 5개월을 저금해서 한 달을 여행하고 다시 5개월을 저금해서 한 달을 여행하면서 살고 있단다.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 그러하지 못했고, 특히나 순례자의 길은 그냥 부러움만 담은 여행길이다.

대신 내 주변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올레길 을 시작으로 많은 도보여행을 할 수 있는 길들이 만들어져 있다. 가끔씩 시간을 내어 유명하다는 도보 여행길을 맛보기씩으로 가보기는 했지만, 인터넷을 찾으니 1,854개의 코스가 있단다. 내가 컴퓨터와 TV만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자연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부러움만 품고 제대로 된 시작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또한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그냥 길일뿐이다. 내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보려고 찾으니 부산의 갈맷길, 동해의 해파랑길, 지리산의 둘레길, 경남 남파랑길, 해안누리길, 이순신 바닷길, 거제의 섬&섬길, 남해의 지겟길 등등. 풍경과 스토리가 어우러진 멋진 이름의 길들이 이리도 많이 만들어져 있다.

도보로 떠나는 여행길은 내가 편안함을 추구해 차를 타고 떠난 여행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해 준다. 천천히 걸으면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장소를 정해 놓고 내비에 그 장소로 곧장 가서 그곳만 보고 그 주변의 유명 먹거리 집을 찾아 먹고 또다시 곧장 집으로 향한 여행길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은 느리게 여유롭게 움직여 보려 한다.

다른 이들과 함께 떠나면 이 또한 즐겁지만 그들의 속도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 후다닥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정상에서 ‘와 멋지다’의 감탄 한 마디와 기념사진 한 컷을 찍고 곧장 다시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운동을 위해 후다닥 움직인 산행은 며칠 동안 다리 고통을 달래며 다음 산행 가기 전까지 계속적인 운동을 다짐하게 만든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시작을 해 보려 한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 나를 맡겨 보자. 산을 오르면서도 내 숨에 맞추어 천천히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즐기는 걸음을 걷자. 아침 이슬을 머금고 피어있는 들꽃들을 이제 놓치지 않고 보고 싶다. 발아래 살아가는 생명들도 살피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걷자. 귀 기울여 들려오는 풀벌레랑 산새들과 대화해 보자.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그들이 가진 삶을 들어보자.

천천히 걷는 숲길 걸음은 그 자체가 치유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을 번잡하게 만들고 있는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고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즐겨보려 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살펴보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에 정신을 빼앗기면 어떠한가.

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명상도 해 보자. 내 숨소리에 집중해 산이 가진 기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산이 가진 기운은 삶에 지친 내 몸을 치유하기에 충분하다. 하루에 조금씩, 천천히. 실천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동네 뒷산부터 시작해 보자. 재미난 TV 프로그램들은 잠시 잊고 주말 가까운 동네 한 바퀴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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