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자꾸만 눈이 감긴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자꾸만 눈이 감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02 16:00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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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자꾸만 눈이 감긴다

매미 울음소리
붉고 뜨거운 거물을 짠다
먼 하늘로 흘러가는 시간의 강물

저 푸른 강에서 첨벙거리며
물고기들은
성좌를 입에 물고 여기저기 뛰어오르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내가 엎질러버린 기억의 어디쯤
흐르다 멈춘 것은

심장 깊숙이 박힌
미늘,
그 분홍빛 입술이었다.

(강인한, ‘입술’)

바야흐로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사방에서 매미가 요란한 것이 이 정열적인 계절도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은 강인한 선생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은 필자가 존경하는 시인 중에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은 기묘하게 전혀 다르다 싶은 단어가 흩어져 있어 전체적인 맥락에 어울리지 않다는 싶다가도 부분적인 상황이 끝나고 전체적인 모양새를 보면 희한하게도 조화를 잘 이루면서 전반적인 흐름이 확연해지게 이끌어가는 작품들이 많다. 이러한 것은 선생만이 가지고 있는 시적 특징이 아닌가 싶다.

붉고 뜨거운 그물을 짜는 매미가 있고, 그물을 만드는 재료는 매미의 붉은 울음소리뿐이다. 그 그물로 먼 하늘로 흘러가는 강물을 향해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푸른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첨벙거리며 여기저기서 뛰어오르는데 그걸 잡겠단다. 하늘로 흘러가는 강의 끝은 어디일까, 당연히 지평선을 따라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의 하늘과 맞닿은 바다인 것이 세속적 시각일 것이다. 하지만 시에서는 이렇게 저급한 답을 거부감을 보인다. 그 강물은 바로 은하수를 상징한다. 그래야 시적 완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럼 물고기는 어디에 있는가, 하늘인가? 하늘에 있는 물고기라니, 그건 바로 물고기 성좌라는 것이다. 이렇게 시에다 신화적인 발상을 끌어들임으로써, 한층 시적 효과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사소한 매미의 울음소리가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은하수 건너에 있다는 ‘물고기자리’는 페가수스자리와 고래자리 사이에 있는 별자리로 동양에서는 황도 십이궁의 열두째 별자리인데, 시에서 이러한 상황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아득하고 환상적이며 황홀한 지경을 불러들이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연인과 첫 키스를 하게 되면 현실적으로는 연인의 앞이지만 정신은 아득해져 정신을 차릴 수 없다고 한다. 흔히 엑스터시(ecstasy) 현상이라는 것이리라. 환상적인 첫 키스의 강렬한 후유증은 오랫동안 현실 세계에서 여운을 남기는 법이다. 언젠가 실수로 잃어버린 옛 추억 속의 그 사실이 그렇게 해서 영속적으로 환생한다는 것이다. 젊은 날 나의 심장 깊숙이 박혀버린 선홍빛 입술로 그녀와의 키스, 그것은 세월이 많이 흘러버린 지금도 잊히지 않고 가슴 깊숙한 곳에 박혀 있는 것이 마치 물고기가 미늘을 물고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지금보다 훨씬 뜨겁고 건강했던 내 젊은 시절의 마지막 심장을 우리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멋진 표현이 아닌가, 그 작은 미늘에 걸린 ‘분홍빛 입술’에 나의 심장에 박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은밀한 그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렇게 뜨겁고 은밀하고 소중하며 나의 육감을 조종하는 존재가 아직도 나를 뜨겁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아! 들뢰즈(Gilles Deleuze)가 “인간은 욕망을 만드는 기계”라고 말했던가, 이 정열적인 계절에 나도 들뢰즈의 말처럼 욕망의 덫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왜일까. 또한, 언젠가 쿠바의 어느 거리에서 만난 늙은 음악가가 했던 “나의 마지막 소원은 포근한 침대에서 생애의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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