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하동군 효자 이양윤 정려비
진주성-하동군 효자 이양윤 정려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09 16: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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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하동군 효자 이양윤 정려비

하동군 양보면 통정리 신정마을 배 바위 고개에 가보면 합천 이씨 이양윤(李陽胤) 선생의 효행(孝行) 정려비(旌閭碑)가 있다.

비명에 ‘효자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증 자헌대부 공조판서 이양윤(李陽胤)지려’이며 연대는 숙종 갑신(1704년)때 이라고 새겨져 있다.

성품이 지극하여 6년간 노막에 거하니 눈과 서리가 불침하였다라고 군지(郡誌)에도 기재되었다.

비문 지은 분은 월성 최익현(崔益鉉) 선생이고 글씨를 쓴 분은 홍문관 응교 하동 정씨 정승현이다.

비석을 보면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고 사방에 돌기둥을 세워 안전케 하고 비석 덮개는 크고 넓어 품위가 있어 보인다.

비문 내용을 보면 ‘효자는 참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이루고 어버이 봉양함을 하늘을 느껴 믿어야 한다.

사람이 다 이치가 우연히 있으면 한 가지 비상을 당하더라도 떳떳이 가히 일에는 연고가 있으니라. 이 선생은 소학서를 역술왕행하여 고비일이 이 다못 어름의 잉어와 장막의 새 또한 적은 뜻이 있는 바이다.

그런즉 자손의 천양을 하고자 하면 먼저 탄식하는 자 굳이 응하지 아니하고 이룸이 없게 되니 그 때는 번거로워 했다.

어버이는 사당 앞에 스스로 불러 할아버지의 나무람을 듣고 작가로서 붓을 잡아 널리 선양하는 자 또한 가히 무폐가 있게 되어 사람의 책함이 두렵게 함으로 사람들이 나아감이로다.

지리산 남쪽 읍은 하동읍의 희망이며 이씨 해마다 인의(仁義)와 착한 일을 많이 한 선비로 살았다.

가까이 있는 이공 양윤은 성질이 지효(至孝)하고 다섯 가지 이치를 겸전하였다.

사람들이 비방함도 없고 이어 그 깊은 밤에 약을 물어 개똥벌레 앞에서 다스리고 6년간 막을 짓고 시묘 살이 하였으나 눈과 서리가 침노하지 않았으니 지금이나 옛적이나 기이하고 드문 일이다.

하늘이 선한 이를 보답하고 시혜함이라 할 것이다.

노수에 이르러 강녕(康寧)은 백세가 되어 하늘의 운명에 있어 금도장과 자주 빛이 비치고 자손이 창대히 번영하였다.

사람이 또한 부족함이니 이공은 중경을 가렸다.
시(詩)에 이르기를 편안하고 공경한 군자(君子)도 구복이라도 도로 하지 않은 자는 이것을 이름이요 청함이 있어 이 정려 기문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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