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정기복의 나리꽃이 내게 이르기를시집 <나리꽃이 내게 이르기를>은 정기복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어떤 청혼>을 발표하고 무려 20년만에 그 동안 쓴 시들을 묶어냈다. 20년, 참 긴 세월이다. 정기복 시인은 소위 ‘386세대’이니 생애 가장 바쁘고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기는 물살은 사나워 파도가 끊임없이 뱃전을 때리고 비바람이 배를 흔들어대는 바다를 건너는 때.
모쪼록 그 다사다난했던 항해를 무사히(?) 아니면 대충(?) 일단 마무리하고 이 시집을 묶어냈다고 생각하니 깊이 숙연해짐을 어쩔 수 없다. 수많은 부침이 있었을 것이고 수많은 체념이 있었을 것이다. 정기복 시인은 몸과 마음에 다가온 그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수련한다. 지렁이나 민달팽이처럼 맨몸으로 철저히 감내한 그 부침과 체념과 수련이 고스란히 시집에 담겼다.
이렇게 정직하고 강직한 시집은 드물 것이다. 실린 시편마다 행마다 이 쓰레기더미 같은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유감하다. 하면서도 미련스럽도록 일말의 요령피우기도 없이 부딪친다. 시인은 특히 산행으로 어지러운 산 아래 세상을 살 수 있는 지혜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 게 분명하다. 생활하는 곳이 경기도라 그랬을까. 북한산은 시인의 손바닥 안에서 알뜰하다.
수록된 시중에 ‘시시포스’를 읽으면 마치 한평생 같은 일이나 비슷한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생계가 휘청거리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모습과 맞닥뜨리게 된다.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그짓을 계속해야 하는지 당장 손을 탁탁 털어야 되는지. 하다못해 시인처럼 기를 써서라도 북한산에 올라 그 봉우리마다 손톱자국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다급해진다.
‘시시포스’ 바로 뒤쪽에 따라오는 ‘콜 하시라’ 라는 시에 접어들면 크크 웃게 된다.
고급 아파트 단지를 가시려거든/ 길에 널린 다른 택시를 이용하시고/ 성석동 잣골, 사리현동 은골, 효자동 사기막골, 원흥동 가시골, 구산동 노루뫼와 거그메…/ 골과 뫼와/ 선유리, 내유리, 벽제리, 도내리…/ 불러 촌스럽고 촌스러워 눈물나는 골에 가시려거든…
필자인 나는 지금 원흥동 가시골 옆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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