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온 산이 촉촉하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온 산이 촉촉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16 16:17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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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온 산이 촉촉하다

대전리 공동묘지로 들어서는 초입

‘1994년 김동식의 묘’

성큼 다가서지 못하는 어느 생의 비悲!

수백 년 고목 잘린 허리에서도 새순이 돋는데
그의 죽음은 얼마나 가벼웠으면 무덤에 시멘트로 덮었을까
혈혈단신인 그의 유언을 받아들고 주저앉은 이웃들
목구멍에 꾸역꾸역 모래 밥 욱여넣듯 콘크리트 씌우며 애간장 녹는다

가난해도 남의 것 넘보거나 빌붙을 줄 모르는 그대는
한 줄의 경전(輕典)이 되었다

늦가을 무서리에 서늘히 움츠러드는 묏등
가랑비 애틋한 술 한 잔을 안긴다
갈라진 등에는 슬픔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얇고 가녀린 햇살 온몸으로 퍼 나르는 개미들
돌아온 국화꽃 비릿한 향기도 얼른 주워 담는다
온 산이 촉촉하다

(김상숙, ‘콘크리트 묘-悲哀歌’)

바야흐로 성묘의 계절이 다가왔다. 산소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 중 하나이리라. 그런데 여기 찾아주는 이 없는 쓸쓸한 무덤이 하나가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용으로 보아 아마 어느 독거노인의 쓸쓸한 죽음이 만들어 낸 사연이리라. 공동묘지에 홀로 누워 있는 이 사자의 사연은 읽어볼수록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반적으로 무덤이라고 한다면 잔디가 덮여있거나, 봉안당 형태로 된 것일 거다. 그런데 콘크리트 묘라고 한다. 무덤을 콘크리트로 완전히 덮어버렸다는 말이다. 의아스럽겠지만,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가끔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인즉 평생 홀로 살아오다 보니,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돌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아예 돌보지 않아도 되도록 무덤 전체를 콘크리트로 덮는다는 것이다.

이 사자의 이야기도 같은 부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는 특별히 유언을 남길 사람조차도 없어, 함께 살았던 마을 사람들에게 겨우 부탁하게 된 것인데, 그 이웃들로 혈혈단신이었던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 콘크리트로 덧씌우기는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나마도 노인은 평소 선행의 모범이 될 정도로 성실하고 선하게 살아 왔기에 마을 사람들이 기꺼이 나서서 그의 장례를 치러주면서 술잔을 안긴다느니, 함께 슬픔을 나눈다니 하여 주위로부터의 동정심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기에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

특히, /그의 죽음은 얼마나 가벼웠으면 무덤에 시멘트로 덮었을까/혈혈단신인 그의 유언을 받아들고 주저앉은 이웃들/ 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짠해짐을 느끼게 한다. 그의 삶이 가벼워서 무거운 시멘트로 무덤을 덮음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무겁게 해주고자 하는 의미로 미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표현에서 이 순간만큼은 나홀로족(?)의 쓸쓸한 최후에 대해서 많은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이 시에서는, 사람은 모름지기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논리도 논리지만, 무엇보다도 가족의 중요성을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최근 들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독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혼술족이니 혼밥족이니 하는 신조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생전에야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수 있겠지만, 끝내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면 생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해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깊은 고민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 주변에서 콘크리트 묘를 더욱 많이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번 시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에 대한 성찰도 동시에 느끼게 해주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나홀로족(?)이 가급적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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