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을의 초입에서
진주성-가을의 초입에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9.22 13:4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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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을의 초입에서

경자년이 참으로 지겹다. 제야의 종소리에 송구영신하며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기대했던 나날들이 예기치 않은 코로나19가 창궐하여 모두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와중에 긴 장마의 진창 속에서 유례없는 집중폭우의 대홍수에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까지 연이어 전국을 난장판으로 헤집어 삶의 터전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설상가상도 유분수지 역병의 창궐에 천재까지 덮치니 이게 천지개벽의 난리 아닌가.

언제쯤이면 이 난리가 끝이 날지 장담도 못 하니 지겹고 몸서리가 난다. 정부가 불허했는데도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개천절 광화문 집회가 각일각 다가오니까 심히 불안하다. 모두가 사력을 다해 한풀 꺾었던 감염확산을 8.15 광화문 집회로 다시 전국으로 확산시켜 급기야 거리두기 2.5단계라는 생계활동 절벽의 언저리까지 간 상황에서 사투를 하듯 바둥거리고 있는데 또 집회라니 이를 어쩌나.

더구나 추석 연휴와 겹쳤으니 개천절 집회가 불씨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으로 재확산 될까 봐 무섭고 겁난다.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언제 다 복구할 것이며 앗기어버린 것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막막하기만 한데 무심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하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괘씸하고 야속하다. 그래도 어쩌나. 자연 앞에 나약한 것이 인간인데 무슨 수로 대적한단 말인가. 저 청명함이 화해를 구하는 손길일 것이다. 내일을 마련하기 위해 화합의 오늘을 맞아야 한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저녁의 선선한 청량감이 폭염에 부대끼어 흐느적거렸던 오감에 생기를 불어넣고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의 흔적들을 어루만진다. 멀어져갔던 높고 낮은 산들도 짙은 푸르름이 서서히 옅어지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들녘 끝의 저만치에 다시 제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우리도 잃어버렸던 일상을 되찾고 하루속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듬성듬성 떠 있는 하얀 구름이 하늘색을 더욱 푸르게 한다. 황금들녘의 작은 일렁거림에 실바람이 일어 고개 숙인 벼 이삭을 알알이 붙잡고 지난여름의 몸살을 앓던 기억들을 지워낸다.

천둥 번개의 으름장도 잊기로 하고 비와 바람과도 벌써 화해를 했다. 이제는 잊어도 좋을 기억일랑 지워야 할 때다. 농부의 땀 내음이 햅쌀밥으로 익어가는 밥솥의 김 오름에서 감미로운 향기로 승화되어 작은 행복의 꿈으로 묻어난다. 몸서리치던 사연들일랑 훨훨 떨쳐버리고 오색단풍의 고운 빛깔로 물들고 싶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듣고 싶고 샛노란 은행잎이 밟고 싶고 감나무 이파리가 빨갛게 물든 외딴집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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